1980년대 초의 ‘항미원조’ 영화는 문화대혁명 이후 개인의 감정과 윤리를 회복하려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기존의 집단 영웅주의와 계급 투쟁 서사를 넘어서는 감정 중심의 도덕 서사를 시도하였다. <심현(心弦)>(1981)과 <심령심처(心靈深处)>(1982)는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개인의 내면, 선택, 책임, 윤리의 문제를 전면화하면서, ‘항미원조’ 전쟁을 개인감정의 차원에서 재구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여전히 감정의 귀속처를 공동체 윤리와 국가 정당성에 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한계 또한 분명히 노출되었다. 이후 1983년부터 1991년까지의 10년은 ‘항미원조’ 영화가 텍스트로 실종된 기억의 공백기였다. 이 시기의 부재는 단순한 단절이 아니라, 정치적 봉인, 문화적 재정렬, 감정의 탈정치화가 복합적으로 작동하던 잠복기였다. 제5세대 감독들의 역사영화가 ‘말해지지 않은 역사’와 ‘침묵된 감정’을 복원하고자 했던 것과 달리, ‘항미원조’는 이미 지나치게 재현된 국가 기억으로, 당대의 감정적 미학과 본질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들어 ‘항미원조’ 영화는 다시 등장하였지만, 이 시기의 작품들은 감정과 윤리의 사유를 복원하기보다는, 시청각적 스펙터클과 장르적 쾌감을 통해 전쟁을 소비 가능한 콘텐츠로 재구성하였다. <신룡차대(神龍車隊)>(1992)는 특수 수송이라는 임무 서사를 통해 전쟁을 해결 가능한 도전과제로 변환하였고, 감정은 내면적 갈등이 아닌 기능적 동기로만 구성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감정 구조의 전환, 기억 양식의 재배열이 시대적 이념 변화 및 산업 구조와 긴밀히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감정의 윤리화는 국가 이념의 새로운 설득 전략으로, 기억의 잠복은 감정 구조의 재조정기로, 장르화는 소비 사회에서의 기억 동원 방식으로 각각 작동하였던 것이다. 본 논문은 이를 통해, ‘항미원조’ 영화가 단지 국가 정체성을 담아내는 주선율 텍스트나 ‘전쟁’ 기억 재현 장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감정 정치, 기억 구조, 서사 형식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문화적 장임을 밝히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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