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일회담의 추이와 북일 관계의 변천을 의식하면서 탈식민의 원칙이 냉전과 분단이라는 현실과 부딪혀 변용되는 과정을 살폈다. 첫째, 한일회담 전개와 북한의 대응을 냉전과 평화공존, 탈식민 등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적 흐름 속에서 짚어보았다. 둘째, 북한의 한일회담 비판 논리와 그 변화를 분석하고 1990년대 이후 북일회담의 내용도 음미했다. 1951년에 미국의 알선으로 한일회담이 시작되었다. 북한은 한일회담을 미국의 군사적 침략의 일환이라고 경계했지만, 식민지배 청산에 대한 의식은 아직 옅었다. 1954년 제네바회의와 1955년 반둥회의로 이어지는 국제적 평화공존 흐름 속에 북한은 일본과 무역 및 문화교류 확대를 꾀했다. 북일 접근은 계속되어 1959년 12월부터 재일한인의 북송/귀국이 이루어진다. 장면 정부와 박정희 정부에서 한일회담은 크게 진전되었다. 한일회담은 탈식민의 원칙이 냉전 격화라는 현실과 타협한 결과였다. 북한은 박정희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한일회담 비법·무효론을 폈다. 탈식민이라는 관점에서는 한일회담의 현안 문제를 놓고 남북한 사이 의제의 동조화가 엿보인다. 1990년대 북일회담은 식민지배 사과와 배상을 둘러싸고 1965년의 한일협정, 그리고 그 이후 한일 교섭의 형식과 범위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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