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실험 시 지도자는 어느 정도의 강도로 첫 대응을 하는가? 그리고 대치상황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후속대응의 강도는 어떻게 변하는가? 첫 대응과 후속대응의 강도가 다르다면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낸 동인은 무엇인가? 북한의 1차와 6차 핵실험에 대한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대응과정을 추적 분석한 결과 초기대응은 강하며 후속대응은 약하였다. 북한의 국지적 군사도발 사례 (연평도 포격도발, 목함지뢰와 서부전선 포격도발, 천안함 폭침 도발)에서 초기대응은 약하고 후속대응은 강하였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이처럼 북한의 핵실험 시 지도자의 대응수위가 변화한 데에는 국지적 도발사례와 마찬가지로 여야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여론의 영향 때문이었다. 특히, 지도자 지지율(재량권)에 따라 여론을 후속대응에 반영하는 양상은 달랐으며 초기 강경대응이 유지되는 기간도 다르게 나타났다. 이처럼 초기 강경대응과 달리 후속대응이 약해진 것은 ‘청중비용 이론’의 반증 사례가 된다. 또, 여야 정치권과 언론이 정치성향에 따라 갈릴 경우 여론도 양극화될 것이라는 ‘엘리트 큐 이론’과는 달리 여야와 언론이 정치성향에 따라 갈리더라도 여론은 양극화되지 않고 다수 여론을 형성해 지도자가 과도하게 강하거나 또는 약하게 대응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였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