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초기 북한은 기계화부대를 대규모로 운용해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북한 은 소련의 도움을 받아 기계화부대를 육성했지만 전쟁을 치르면서 점차 한반도의 상황 에 맞춰 기계화부대를 편성하고 운용해 나갔다. 북한이 처음으로 편성한 제105전차여단은 소련군 전차사단의 편제를 참고해 만들어 졌다. 전쟁이 일어나자 제105전차여단은 한국군과 미군에 큰 피해를 안겨주며 승리를 거듭했다. 하지만 제105전차여단은 전차연대 단위로 분산되어 운용되었다. 한반도에서 는 제105전차여단과 같은 대규모 기계화부대를 집중적으로 운용하기 어려웠다. 제105 전차여단은 서울을 점령한 뒤 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제105전차사단은 미군이 참전한 이후 작전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가장 큰 원인은 편제상의 문제였다. 제105전차사단은 자체적인 방공 전력이 부족했으며 공병과 수송 등 전투지원 능력이 부족했다. 이 때문 에 제105전차사단은 7월 이후 미국 공군의 공습과 보급상의 어려움으로 점차 전투력 이 저하되기 시작했다. 낙동강 방어선에 도달했을 때 제105전차사단의 공세 능력은 한계에 달해 있었다. 제16기계화여단과 제17기계화사단은 제105전차사단 보다 규모가 작았으며 한반도의 전쟁 양상에 보다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제17기계화사단은 제105전차사단의 경험을 반영해 사단 직할의 방공부대를 편성하는 등 개선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북 한의 역량으로는 대규모의 기계화부대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 결과 1950년 8월부터 규모가 더 작은 독립전차연대들이 편성되기 시작했다. 독립전차연대들의 규모는 실질적 으로 대대급이었으며 보병 부대에 배속되어 작전을 하는데 맞춰져 있었다. 이와 같은 편제 변천은 북한이 기계화전을 수행하면서 파악한 전훈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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