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1996년에 발표된 박상연의 소설 『DMZ』와 2000년에 상연된 박찬욱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비교하여 동일한 서사를 공유한 작품 안에서 분단의 문제가 다뤄지는 양상을 살펴봤다. 박상연의 소설은 1990년대 문학 장에서 주목받지 못했으나, 오히려 이 때문에 이 작품만이 지닌 개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 작품에서 한국전쟁의 중립국행 포로가 등장하고 그가 재현되는 방식은 당시 문학 장에서 헤게모니를 지니고 있던 리얼리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의 담론과 어긋났다. 『DMZ』에서 중립국행 포로는 증언자의 권위를 확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삶을 살아낸 인물로도 재현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재현된 중립국행 포로의 형상은 서사적 현재에서 다뤄지는 판문점 살인 사건과 연결됨으로써 탈냉전기에도 지속되는 냉전의 문제와 더불어 분단을 고착시킨 남북한의 적대적 공생 관계를 성찰할 수 있게 한다. 한편 <공동경비구역 JSA>는 웰 메이드 영화 기획과 박찬욱의 비주류적 감성이 타협적으로 결합된 영화이다. 이러한 타협은 원작의 서사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유머의 코드를 영화 서사 속에 삽입함으로써 가능했다. 이 과정에서 원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중립국행 포로는 상징적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그 대신 남북 병사들이 나눈 우정과 취향의 연대가 부각됐다. 이는 영화가 대규모 자본과 협업 시스템에 기반한 산업적 매체라는 특징과 무관하지 않다. 본 논문은 이러한 매체적 특성과 산업 구조의 차이가 서사의 정치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함으로써 냉전 인식이 탈냉전기에 남한 사회에서 어떻게 전환되고 있는지 그 일면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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