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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조선 후기 평안도 사찰과 고승 계보 -금석문을 통해 본 지역 불교의 스펙트럼-

Temples and Monastic Lineages in Late Chosŏn P’yŏngan Province : The Spectrum of Regional Buddhism through Inscriptional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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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용태
소속 및 직함 동국대학교
발행기관 한국사연구회
학술지 한국사연구
권호사항 (210)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53-85
발행 시기 2025년
키워드 #평안도 불교   #금석문   #승역   #보현사   #법흥사   #영명사   #편양파   #김용태
조회수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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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평안도는 조선시대 불교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제자 편양 언기(鞭羊彦機)의 편양파는 보현사(普賢寺)가 있는 묘향산을 근거지로 하여 최대 문파로 성장하였다. 이 글에서는 사찰 수의 변동과 승역(僧役) 운영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평안도 불교의 변화상과 그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북한지역 불교 금석문 탁본 자료를 중심으로 평안도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인 보현사, 법흥사(法興寺), 영명사(永明寺), 그리고 다른 4개 사찰의 역사와 특성을 고찰하였다. 다음으로 금석문에 나타난 편양파 주류 법맥 계보의 위상과 활동, 기반 사찰을 검토하였다. 평안도의 사찰 수는 16세기 전반 221사, 18세기 중반 234사, 20세기 초의 134사로 변화하였다. 17세기에서 18세기 전반까지 국경 방어의 최일선 지역인 평안도의 승역은 산성 및 사찰 조성, 승군의 방비 등 군사적 성격이 강하였다. 하지만 18세기 중반 무렵 청과의 전면전 위험이 사라짐에 따라 평안도의 재정 운영권이 중앙의 호조(戶曹)로 이관되었고 산성을 지키는 사찰 및 승역의 필요성과 지원 규모가 감소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상이 평안도 지역 사찰 수의 변동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편양파 일부는 18세기 전반부터 남방으로 진출하여 전국화되어 갔지만, 묘향산과 평안도 불교의 본격적 침체는 18세기 후반 이후 급격히 전개되었다. 이 글에서는 금석문 자료를 통해 조선 후기 평안도 불교의 특징과 사찰의 존재 양상을 검토함으로써 지역 불교사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보았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