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 초, 고구려는 313년에 낙랑군(樂浪郡), 314년에 대방군(帶方郡)을 차례로 정복함으로써 한반도 서북 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을 확보하였다. 이는 고구려 대외 팽창의 중대한 전환점이자, 서북한 지역의 정치·문화 지형을 재편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이 시기 평양·안악 일대에는 기존의 전축분이나 석실봉토분과 구별되는 독특한 묘제, 즉 전석혼축벽화고분이 등장하였다. 전석혼축벽화고분은 석재와 전축의 혼합 구조에 벽화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구조적·내용적 차별성을 지니며, 단순한 전축분의 말기적 변형이 아니라 복합적인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과도기적 묘제로 평가할 수 있다. 기존 연구는 이 무덤 양식을 전축분이나 고구려 벽화고분의 일부로 간주하면서, 그 축조 집단의 성격을 본격적으로 탐구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전석혼축벽화고분의 편년과 등장 배경, 구조 및 벽화적 특징, 그리고 축조 집단의 정체성을 고찰하였다. 특히 이 무덤이 고구려의 직접적 강제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위진남북조 시기 중국 본토의 혼란을 피해 고구려로 귀부한 유이민 집단이 새로운 체제 안에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위상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문화적 결과물이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를 통해 전석혼축벽화고분은 고구려의 단선적 확장이나 일방적 문화 이식의 산물이 아니라, 외래 집단의 주체적 수용과 고구려의 통치 전략이 맞물려 형성된 복합적 성격의 묘제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나아가 이는 고구려가 서북한 지역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정치적 통합과 문화적 융합의 다층적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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