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개성 출신의 의사로 대한적십자사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한 손금성의 의료 수련과 적십자 활동에 대하여 살펴본 글이다. 이글을 통해 첫째 그의 개성 한영서원 수학과 독립만세운동 참여, 둘째 미국 필라델피아 하네만의과대학 유학, 셋째 해방 후 대한적십자사 조직과 적십자 활동, 넷째 대한의학협회와 적십자의 발전을 위한 제언 활동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이 연구를 위하여 대한적십자사 관련 책자와 논문, 신문, 문서 등을 활용하였다. 먼저 대한적십자사와 적십자병원과 간호학교 등에 관한 논문과 저서를 활용하였다. 손금성의 국내 수학과 미국 유학, 미국에서의 민족운동 관련하여 국내에서 발간되던 『동아일보』와 『경향신문』 등과 미주에서 발간되던 『신한민보』 등의 신문을 활용하였다. 그리고 손금성 작성 「赤十字의 祕史」, 6·25전쟁 직후의 자술서 등의 수기를 이용하였다. 또 미국에서의 그의 의료 수련과 관련하여 하네만의과대학(Hahnemann Medical College)의 the Yearbook of the Hahnemann Medical College(1933) 등을활용하였다. 개성 출신으로 한영학원을 졸업한 손금성은 선각자이며 민족운동가였다. 그는 3·1운동에 참여하였고, 3·1운동 후 정신의 개조에 의해 신문화와신사회를 건설하려는 문화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하네만의대에 들어갔다. 2년간 의예과와 4년간의 본과를 마치고 내과 전문의 의사자격을 획득하였다. 이어 그는 매사추세츠주 보스톤의 린(LYNN)종합병원에서 D.H.M.(디지털홀로그래픽 현미경, Digital Holographic Microscopy) 분야의 자격을 취득하였다. 미국에 거주하면서 그는 대한인국민회와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에 참여하여 민족의 해방과 발전을 도모하였다. 해방 후 손금성은 대한적십자사 초대 사무총장으로 대한적십자사의 부활과 발전에 기여하였다. 또 그는 10여 년간 서울적십자병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적십자 의료체계의 발전과 의사의 양성에 큰 공헌을 하였다. 서울적십자병원 소속의 적십자간호학교장으로 간호원의 양성에도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1959년 그는 서울적십자병원장과 적십자간호학교장과 적십자혈액원장을 물러났다. 이후 그는 의료와 적십자의 발전을 위해 잡지와 신문에 기고하였다. 특히 그는 대한적십자의 책임자를 만나 대한적십자사 부활의 비사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예방의학과 응급구호의 발전과 간호원 육성에 유념하도록 당부하였다. 앞으로 이 연구는 대한적십자사 조직의 부활과 정비와 발전에 관한 사실을 밝히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서울적십자병원의 의료 발전과 간호원 양성에 관한 역사를 규명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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