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은 작가의 또 다른 자아이며 독자는 그 자아에 공명하는 것이 책읽기라 할 수 있다. 최인훈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으로 월남하여 남한에 정착한 작가이다. 한국현대사 자체가 그 삶의 현실이었다. 따라서 하나의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 소설의 근간을 이루며, 『광장』은 그것을 대표하는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이 일제 때 북한에서 태어나 광복 후 남한으로 내려오고, 다시 월북하여 북한 정치체제를 체험한 후 한국전쟁 때 인민군 포로로 잡혀 있다가, 휴전 당시 중립국을 선택하여 인도로 가는 배안에서 사라지는 줄거리가 바로 그렇다. 표면적으로는 현대사의 비극과 이데올로기적 사변으로 점철되어 있으나, 한국사의 과정 속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추적하는 것이 소설의 관념적 얼개를 이룬다. 그 정체성의 한 뚜렷한 면모가 한국인으로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는 불교적 정서에 있다. 윤회와 인연, 불교적 수행방식인 소승과 대승, 중론적 사유와 서방정토를 꿈꾸는 것, 결국 ‘이 언덕’을 떠나 고해를 건너 ‘저 언덕’에 도달하는 반야바라밀다, 즉 도피안의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내용과 상징, 그 전개에서 이러한 불교적 정서를 감지할 수 있다면 그가 추구하는 정체성의 일면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며, 다른 작품 속에서도 불교적 정서의 흐름을 추적해봄으로써 현대 한국소설의 대표적 전범으로서 최인훈 소설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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