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은 김원일이 불가해한 남성 주체가 등장하는 초기단편에서 벗어나 문학적 전환의 계기를 마련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본고는 이 작품이 표층적으로는 당대 사회의 반공 이념에 부합하는 서사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이면적으로는 이데올로기 비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읽어내려고 한다. 작가는 70년대 사회에서 월북한 아버지를 불러내기 위해 소년 갑수와 중년 갑수의 시점을 이용한다. 그래서 겉으로는 아버지와의 개인적 화해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심층적으로는 아버지를 역사적 맥락에 위치시키고자 한다. 이 작품은 반공 이념에 충실한 소시민 중년 갑수와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인 소년 갑수를 의도적으로 교차 서술하여 아버지를 순진한 사회주의자로 이미지화하고 연민의 대상으로 재설정한다. 이러한 과정은 함구했던 아버지를 발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개인적인 화해를 가능케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아버지를 역사적 맥락에 위치시키려는 전략이 숨어 있다. 백정은 사회주의자가 지닌 낙인을 의미하는 언표이며, 작가는 아버지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를 지우는 작업을 수행한다. ‘꿈’ 등의 몽환적 배경을 이용한 시점 교차 서술로 남북의 이념 대립을 비판한다. 겉으로는 사회주의만을 비판하는 것으로 여겨지나 궁극적으로는 남한의 이데올로기가 가진 폭력성까지 드러낸다. 또한 소년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이미지와 중년 갑수의 회상에서 드러난 김삼조의 이미지를 불일치시켜 인위적으로 서사에 균열을 만들기도 한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전에 제시했던 백정 김삼조의 이미지를 교정함으로써 그동안 이데올로기의 유령으로 배제되었던 아버지를 사회주의자로써 역사적 차원에 배치시킨다. 요컨대 노을은 ‘아버지와의 개인적 화해’라는 표면적인 서사가 절정에 이를수록 아이러니하게 ‘폭력적인 사회주의자였던 백정 아버지’의 이미지를 교정시키는 양상도 강화되는 이중 서사 전략으로 ‘죽은’ 아버지를 다시 한국의 역사 속에서 불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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