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의 <잔등>은 감격과 흥분으로 넘쳐흐르던 해방직후의 현실을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묘사하고 있는 수작으로 평가되어 왔다.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이 지상과제였던 과거와 달리 해방기는 압제로부터의 해방과 새로운 정치체제의 구축이라는 두 과제가 동시에 제기되었던 시기이다. 이 작품의 화자는 잔류 일본인들을 대하는 두 인물인 소년과 할머니를 통해 이 시기가 가혹한 혁명기임을 밝히고 있는데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는 새로운 민족국가 건설에 대한 작가의 기대가 반영되어 있다. 작중 화자인 천복은 소비에트에 대한 두 이미지-따발총과 탄자-를 통해 소비에트에 대한 사유를 전개한다. 당시 북한지역에서 소비에트군대는 약탈자이자 해방자라는 이중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천복은 전자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측면을 후자에 대해서는 이념적인 우월성을 강조함으로써 소비에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완성한다. 그러나 천복은 소비에트가 표방한 국제연대의 이념을 동경하면서도 그 실상이나 사회주의 이념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는 그의 소비에트 인식이 불완전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불완전함은 그가 관찰하는 두 인물과의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소년과 할머니는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적인 인물들이다. 화자인 천복은 이들이 보여주는 ‘열정’과 ‘연민’이 새로운 민족국가의 원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들을 행동으로 이끌어 낸 사회주의자들과 그들의 이념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작품에 대해 ‘감격’과 ‘자기변혁’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김남천의 평가는 ‘혁명’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압제로부터의 해방과 새로운 정치체제의 완성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염두에 두고 있던 김남천과 달리, <잔등>에서 ‘혁명’은 아직 ‘해방’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천복이 소비에트에 대한 강한 동경을 표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사회주의 이념이나 사회주의자가 직접 등장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천복은 소비에트 국제연대를 동경함으로써 해방된 조선에서도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새로운 미래가 도래하기를 꿈꾸었으나 이것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이것은 그의 정치의식이 아직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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