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해방기에 공연된 김태진의 <임진왜란>(1946) 공연 대본 발굴에서 비롯되었다. 연구목적은 일차적으로 1946년에 공연된 <임진왜란>의 작품 분석과 해방기 역사극 규명에 있다. 동시에 이 작품을 계기로 그동안 한국 근대희곡사에서 거의 연구되지 않았던 예술인 ‘김태진’(1903~1949)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김태진은 식민지 시대 영화계와 연극계에서 배우, 감독, 극작가, 연출가로 활약한 전방위적인 예술가였다. 초기 경향파 영화와 카프 연극운동, 대중연극과 일제 말기 국민연극 등에 관여하며 식민지 문화예술인의 굴절된 삶을 살았고, 해방이후 진보적 연극운동을 하다가 47년에 월북했다. 해방 이전 김태진의 사상적 행보와 활동이력은 해방 이후 조선연극동맹(朝鮮演劇同盟)과 좌익 문화운동의 이념 하에서 ‘민족연극’을 주장했던 그의 연극론과 작품 <임진왜란>을 해석하는 근거들이 되어 준다. 김태진의 <임진왜란>은 당시 좌익연극인들의 신념에 입각하여, 기록과 고증에 따른 ‘사실(事實)’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진보적인 연극이 나아갈 ‘전망’을 제시하는 연극으로 재현되었다. 진보적 리얼리즘을 창작론으로 하여, 조선 사회의 오래된 병폐를 적나라하게 재현하고 새로운 역사의 혁명적 세력을 백성과 민중에게서 찾았다. 해방기 조선사회가 호출한 이순신은 왜적이라는 국가 외부의 적보다 권력쟁투에 몰두하는 지배계급과 당쟁으로 점철된 조정에 의해 희생당하는 외로운 영웅이다. <임진왜란>은 400년 전 임진왜란 당시의 과거를 향한 시선이 연극적으로 재현된 것이지만, 해방기라는 현재의 좌절과 미래의 불안이 상호 연루된 시간성을 담고 있는 희곡이다. 이 작품에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오욕과 임진왜란 승전의 노스텔지어를 반제국주의 해방과 프롤레타리아 혁명 사상을 고취하는 투쟁의 무기로 삼고자 했던 조선연극동맹과 좌익 연극인의 욕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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