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과 사향노루는 그 서식환경이 서로 비슷하다. 둘 다 겁이 많은 초식동물로 바위산에서 조심조심 살아가며, 수백만 년 동안 가장 원시적인 형태를 간직하여 왔다. 그래서 ‘살아 있는 화석’들이라 흔히 일컬어진다. 산양은 우리나라 곳곳에 서식했으나, 사람들의 극성스런 남획으로 지금은 주로 민통선과 그 가까운 곳에 약간씩 분포되어 있다. 사향노루의 경우는 거의 멸종된 상태며, 외국으로부터 들여올 수도 없다. 전 세계적으로도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인데다, 이동과정에서 구제역과 같은 무서운 병들에 의해 멸종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의 도움을 받아 복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사향노루의 원종확보차원에서도 그렇고 남북 간에 관계개선에 기여할 수도 있어 더욱 좋다. 산양이나 사향노루가 우리나라에서 계속 생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대중매체에 의한 계몽이 매우 필요하다. 보도는 희귀성 야생동물에 대한 시민들의 보존의지를 함축하는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 사냥이 건전한 스포츠인지도 따져 볼 일이다. 보신이나 기호를 위해 산양이나 사향노루를 죽인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도 깨닫게 해야 한다. 산양이나 사향노루는 위해조수도, 맹수도 아니다. 다른 천적들로부터 생명을 보존하기위해 위험스런 절벽 사이를 옮겨 다니면서 애처롭게 살아가는 나약하고 겁 많은 그런 짐승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그들은 우리에게 생명의 중요성을 시사해주는 그런 짐승이다. 서식지는 보호관리 차원이 아니라 보전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런 동물들에 대한 애틋한 배려 없이 인간사회의 도덕성을 언급한다는 것은 배타적ㆍ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연유한다. 이런 잘못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선 학교교육도 매우 중요하다. 한 마리의 호랑이나, 표범이나, 늑대나, 스라소니도 없는 나라임을, 거의 멸종직전에 놓여있는 사향노루에 얽힌 슬픈 사연을 학생들로 하여금 알게 해야 한다. 그런 선상에서 우리사회에서의 윤리도 언급되어야 한다. 생명의 중요성과 다양성에 관한 인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사는 이 나라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런 짐승들의 나라라는 사실도 깨닫게 해야 한다. 건강한 생태계는 서로 의존하면서 사는 구성원의 다양성에 있다. 생태민주주의에서는 그 중심개념이 고통이다. 생태민주주의에서 요구되는 이성은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생태구성원도 배려하고 염려하는, 고통의 아픔을 함축하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인권은 자연권으로, 민주주의는 생태민주주의로, 윤리는 환경윤리로 나아가야 질적으로 더 진화된 민주주의며, 윤리며,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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