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회학, 또는 근대미술비평사의 관점에서 박문원(朴文遠, 1920~1973)은 여러모로 각별한 주목을 요하는 논자다. 그는 소설가 박태원의 동생으로 경성제일고보-연희전문-동북제대-경성대로 이어지는 인텔리 교육의 수혜자였고 해방공간에서 조선프롤레타리아미술동맹의 주축으로 활동하면서 대표적인 좌파 미술이론가로 부각됐다. 6․25전쟁 직후 월북한 이유에는 북한미술담론의 중심에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리얼리즘의 북한식 체화를 주도했다. 또 1960년대 이후에는 미술사가로 변모하여 고대 미술의 서술방법론에 천착하여 북한식 미술사 서술이 확립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박문원의 생애를 돌아볼 때 그의 미술비평과 미술사 서술의 논리 전개를 검토하는 일은 해방 후 미술계의 정황을 헤아리고 남북한미술의 분기 지점을 확인하는 기초가 될 수 있다. 아울러 박문원 텍스트 검토는 ‘예술과 사회의 관계’ 문제에 대한 해방기 미술계, 초기 북한미술계의 이해 방향과 수준을 가늠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조선미술의 당면과제」(1945)에서 「미륵사 전설에 대하여」(1967)에 이르기까지 박문원의 텍스트를 일별해보면 무엇보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 대한 각별한 애정, 그리고 작가 주체의 능동적 역할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그는 처음부터 레닌을 따라 사회주의리얼리즘을 ‘객관적 세계를 본질적인 면에서 파악하는 과학적 태도’와 ‘인민의 나아갈 바를 가리키며 고무추동하는 실천적 태도’의 변증법적 통일로 이해했고 그러한 변증법적 통일의 주체로 작가를 내세우는 태도를 시종일관 유지했다. 이에 따라 현실의 기계적 재현을 지향하는 인상주의 내지는 자연주의뿐만 아니라 생산성을 강조하면서 작가 주체를 도식의 틀 속에 가두는 당대 소비에트 미술의 경향성 또한 그의 적이 되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박문원에게서 이러한 작가 주체에 대한 강조가 점차 조선전통의 詩 정신, 고대 신화에 대한 천착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작가 주체의 능동적 태도를 고무하기 위한 대안으로 선택된 전략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사회주의리얼리즘의 두 가지 축, 과학적 태도와 실천적 태도 가운데 전자-과학적 태도의 위상을 위축 또는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즉 ‘프롤레타리아의 당파성’을 강조하던 해방기 박문원은 ‘조선적인 것, 애국주의와 독창적 예술성’을 강조하는 1960년대의 박문원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해방공간, 그리고 1950~1960년대 발표된 박문원의 미술비평, 미술사서술은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중시하는 비평가, 미술사가에게 의미심장한 반성적 사고의 모델이다. 박문원이 제기한 ‘과학적 태도’와 ‘실천적 태도’의 종합, 현실의 반영과 현실의 변혁을 함께 수행하는 예술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한국근대미술과 예술사회학의 쟁점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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