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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미국, 유신, 그리고 냉전체제

The US, Yushin, and the Cold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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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배
소속 및 직함 신라대학교
발행기관 한국미국사학회
학술지 미국사연구
권호사항 38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51-190
발행 시기 2025년
키워드 #냉전   #중미화해   #유신   #7.4 공동선언   #한미관계   #김정배
조회수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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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70년대 초 동북아 냉전해체기에 박정희는 강대국들 사이의 긴장완화 과정에서 약소국이 희생될 수 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남북통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유신을 단행했다. 이미 비상대권을 갖고 있는 현직 대통령이 헌정을 유린하면서까지 그렇게 해야만 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박정희는 중미화해 이후 제공된 한반도의 구조적 안정성에 적극적으로 조응할 수 없었다. 닉슨독트린과 중미화해는 미국과 중국의 근본적인 정책전환이었으며 동북아 냉전구조의 해체를 의미했다. 한반도에서 안보안정성이 담보될 수 있는 구조적 여건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박정희정권은 이러한 변화된 안보환경에 안보위기 강조와 남북대화 추진으로 대응했다. 1971년 12월 국가비상사태 선언과 7.4남북공동선언이 그것이었다. 박정희는 한편으로는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여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과의 대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였다. 미국은 독재를 우려하면서도 남북대화를 적극 지지했다. 국가안보의 측면에서 보면 박정희정권은 미국의 정책과 궤를 같이 해야 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미국의 반발은 물론이고 국내외의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박정희에게는 국가안보보다 더 우선적인 것이 정권안보였기 때문이다. 박정희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한반도의 긴장완화는 치명적일 수 있었다. 그동안 취약한 정권을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수단이었던 냉전 담론과 북한 위협은 중미화해와 남북대화로 인해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내부통제 강화와 남북대화 추진은 정권의 태생적 속성과 시대의 변화에 편승해야 하는 딜레마를 반영했다. 박정희는 남북대화가 진전되고 미국의 새로운 정책이 적극 추진된다면 정권이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보았다. 미국은 조만간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유엔사령부를 해체하고, 냉전적 외교를 접을 것이다. 그리 되면 국내에서 민주화와 통일의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고 결국 정권 자체가 위태롭게 될 것이다. 박정희로서는 예상되는 정권의 위기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대통령선거제도를 바꾸는 것뿐이었다. 그러한 박정희의 선택은 무엇보다 이미 파인 미국과의 불신의 골을 더욱 깊게 했다. 박정희정부와 미국 사이의 불신은 특히 박정희의 북진 가능성과 독재에 근거했다. 박정희정부는 협상이나 압력의 수단으로 북진을 종종 언급했다. 게다가 유신은 한반도의 구조적 안정을 목적으로 삼은 미국의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되었다. 미국은 국익을 위해 유신체제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박정희에 대한 불신은 쉽게 해소될 수 없었다. 박정희는 영구집권체제를 수립해야만 위기에 처한 국가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신은 국가안보위기가 아니라 정권위기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대응이었다. 그것이 태생적 한계에 묶인 박정희정권에게는 유일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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