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에 있어서 항상 매우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소는 한미군사동맹과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확립, 소련, 중국, 북한의 견제 등 군사안보적인 측면이었다. 물론 양국 간의 경제적인 측면도 최근에는 한미관계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로 고려된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의 한미관계에서 이러한 상시적인 주요 변수 못지않게 크게 작용했던 요인이 한국 내의 반미감정의 증가였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과 인권탄압, 그리고 반민주적 행태에 대하여 미국이 침묵하자 한국의 국민들은 그동안 미국에 대하여 품어왔던 우호적인 인식이 뭔가 오해였음을 깨닫기 시작했고, 미국의 진면목은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 향상을 지향하기보다는 자국과 한국 지배자들의 패권적 이해의 옹호였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미국은 이러한 반미 분위기가 한국에서의 대미 우호적인 정권의 유지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인식하고 반전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김대중 재판 사건에 개입하여 김대중의 사형을 중시시킴으로써 한국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옹호한다는 점을 국내외에 부각하여 반미여론을 잠재우려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당시에 전두환 세력에 의해 자행되었던 훨씬 더 심각하고 패륜적인 탄압과 반민주적 행위에 침묵하면서 전두환 정권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반미정서를 되돌리려는 미국의 목표가 달성되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인들은 1980년 광주학살과 전두환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역사적 과정을 겪으면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들을 외면하는 미국을 대면하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미국이 정말 우리의 동맹이자 친구인지 헷갈려 하면서 그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1980년 초반의 한미관계는 1980년대 이후 한국인들 사이에서 점증하는 반미 감정을 고려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위태롭고 불안한 형편에 놓여있었으며 그러한 현상을 불러온 상당한 원인은 미국이 인권과 민주주의 등에 대한 기본적 가치를 부정했던 전두환 정권과 밀월관계를 유지했다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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