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1998년과 2008년의 두 차례 금융위기는 동아시아가 미국과 ‘비동조화(decoupling)’하는 ‘아시아홀로서기(Asia alone)’ 지역협력을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아시아는 아직 세계 유일의 지역주의 불모지로 남아 있다. 여기에 이처럼 공동체 제도화 수준이 낮은 주 이유는 바퀴 축과 살(hub-and-spoke) 구조를 기초로 하는 샌프란시스코체제, 제국주의와 중화민족주의의 유산인 과거사 왜곡과 영토분쟁 등이다. 현재 동아시아에서는 4개의 협력체가 진행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ASEAN+ 3(APT) 대 동아시아정상회의(EAS이며), 경제적으로는 환태평양 동반자협정(TPP) 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다. EAS와 TPP는 미국이, APT와 RCEP는 중국이 각각 주도하고 있다. 이렇게 동아시아 지역주의가 중층화된 것은 미국이 아시아로 돌아와 떠오르는 중국 견제에 직접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형태는 중화주의와 미국 예외주의 간의 패권다툼이라고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주의 추진에서 주역은 동남아국가연합(ASEAN)이며, 한국도 한ㆍ중ㆍ일 정상회의 추진 등 어느 정도 배역을 맡아왔다. 그러나 한국은 지역협력 추진에 과욕을 버리고 ASEAN과 전보다 더욱 긴밀히 협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중과 중-일 사이의 대립이 첨예화될수록 한국이 나아갈 길도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우선 한국은 대 미ㆍ중 관계에 있어서 한 편은 한국의 동맹국이고 다른 한 편은 적의 동맹국일 뿐 아니라, 유사시 한-미동맹은 협의, 중-북한동맹은 즉각 자동 개입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미-중 사이의 균형외교는 비논리적임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일본과는 가시지 않는 갈등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지역적ㆍ세계적 운신 폭이 좁아지면 중국의 우위가 굳어져 중-일 사이에서 전략적 입지가 어려워짐을 고려하여, 한국은 일본에 대해 역사인식과 안보정책을 구분하여 대처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겠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