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시의 성립과 더불어 시는 노래로부터 분리되어 자율성을 부여받게되었다. 그 결과 시와 노래가 중첩되는 영역이 소홀하게 취급되는 것은 당연하다. 시와 노래의 공존은 근대적 자유시 성립 이전의 현상에 속하기 때문이다. 근대 초기에 유행했던 ‘창가(唱歌, chang-ga)’가 대표적이다. 창가에서 자유시로 이행하는 과정은 노래로부터 시가 영구적으로 해방되었음을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자유시의 성립 이후 시와 노래의공존 현상, 즉 ‘가곡(歌曲, art songs)’의 성립과 그 발전과정이 문학사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학사의 관점에서 봤을 때 기존의 시작품을 가사로 해서 악보를 제작하는 가곡 창작의 과정은 ‘시와 노래의 일치’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전근대적인 사고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음악사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음악의 근대화는 시에 종속되어 있는 성악(vocal music) 중심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음악 그 자체만을 추구하는 기악(instrumental music)을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시와 노래의 일치’를 추구하는 성악의 전통을 잇고 있는 가곡이 음악사에서 중심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곡은 문학사와 음악사에서모두 소외된 장르인 것이다. 특별히 한국의 가곡은 기독교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기 때문에 찬송가(hymn)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로 인해서 불교 계열 시인들의 작품이 배제되기도 했다. 또한 1절에서 2절로 되돌아오는 유절형식(有節形式, strophic form)의 작곡법도 찬송가의 영향으로 볼 수있는데, 그로 인해서 시조(shijo)를 비롯한 정형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1920년대 중반 이후 민요(folk song)와 자유시의 결합을 주장하는 시인들이 가곡 작곡가와 결탁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그로 인해서 시조와 민요를 기반으로 하는 가곡은 기생 가수를 동원해 대중음악으로 성장한 전통음악, 즉 잡가(雜歌, vulgar songs)와 대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곡의 지역성(locality)이 강화된다. 한편 작곡가들이 동요 제작에 뛰어들면서 노래(=동요, children’s song)를 전제로 하는 시문학(=동시, children’s verse)의 성립을통해 문학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해방 이후에는 이념적검열의 문제로 인해 월북한 작사가(lyricist)의 가사를 강제로 개작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이는 ‘시와 노래의 일치’라는 가곡의 본래 취지를 위반하는결과를 낳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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