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절망의 시대로 규정하게 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지 벌써 반세기가 지났지만 동아시아에서 그에 대한 기억의 전쟁은 여전히 뜨겁게 진행 중이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이라는 어두운 과거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과거사 극복에 기초한 국가 간의 상호 이해와 화해가 진전하고 이미 오래 전부터 평화로운 상호 공존과 협력이 지배하고 있는 유럽과 전혀 다른 상황이다. 이 극명한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의 과거사 극복은 왜 독일과 그토록 다르게 진행된 것일까?이 글은 독일과 일본의 과거사 극복 차이를 각각의 좁은 “국경” 테두리 안에서 파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테제를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다시 말해 일본의 전후 인식은 이미 군정기에 미국의 점령정책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았으며 이후의 시기에 수정되지 않았다. 한국 전쟁 등 동서 대립이 격화되었던 냉전기, 남북한 독재 체제 사이의 극한적인 대립, 중국과 소련의 갈등 등에 의해 이러한 초기의 전후 의식은 더욱 강화되었으면 강화되었지 수정되지 않았던 것이다. 유럽의 상황은 이와 전혀 달랐다. 독일은 유럽 사회에 다시 주권 국가로 인정받고 그들의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철저한 과거사 극복이 필요했다. 법적, 정치적, 역사적 청산이 뒤이었다. 배상과 보상도 이루어졌다. 60년대 중반 신나치의 등장에 대한 이스라엘을 비롯한 유럽 여론의 충격과 압박은 독일에서 본격적인 과거사 극복이 시작되게 하는 데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 일본의 전후 의식을 평가할 때 이러한 연관성을 신중히 고려해야 하며 이를 간과하는 비역사적 접근법은 심각하게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비역사적인 단순 비방은 다만 민족 감정을 자극한 결과 우리가 자주 경험했듯이 양국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해와 극우적 민족주의의 악순환을 초래할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종전 후 동북아시아의 상호 관계사에 대한 좀 더 면밀한 후속 연구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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