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현재까지 발해 기와의 연구사를 남한과 북한, 일본, 중국과 러시아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남한의 연구는 유물에 대한 직접 조사의 제약이라는 제한적인 환경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형식분류안과 편년안을 제시함으로써 발해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연구를 시도하는 단계에까지 진척하였으나, 여전히 다양하고 포괄적인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반면에 북한은 일찍부터 발해 유적을 대상으로 연구가 가능하였다는 장점을 활용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학문적 연구 경향이 정치적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는 아쉬움이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가장 먼저 발해 기와 연구에 착수한 일본은 다양한 방법론적 이론을 적용하는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 가장 큰 성과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단편적 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이 연구의 대상이라는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적극적인 동북공정 사업을 추진한 중국은 상경성, 팔련성, 서고성, 국내성 등의 성곽 유적과 육정산 고분군 및 용두산 고분군 등 발해의 주요 유적을 발굴함으로써 가장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발해 기와에 대한 매우 상세하고도 분석적인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석 방법에 있어서 정치적 관점이 다분히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그 결과 연구의 성과가 상당히 변질되고 왜곡된 아쉬움이 큰 실정이다. 연해주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의 발해 기와 연구는 한국과의 공동발굴조사가 활성화됨으로써 비로소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발해 기와 출토 유적이 가지는 지역성과 성곽에 집중된다는 공간성의 측면에서 볼 때 발해의 문화를 통시적으로 고찰하는 데에는 일정부분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러시아의 발해 기와 연구의 한계는 방법론적인 면에서도 기존 방식의 답습 등이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점이 있다. 이처럼 남한을 비롯하여 발해 기와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북한, 중국, 러시아와 일본은 각각의 연구 대상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해 왔다. 더욱이 일부 국가의 경우 학문적 객관성과 진정성이 결여됨으로써 잘못된 역사인식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통합적이고 포괄적인 연구 태도를 공유하고 유기적인 연구 협력과 정책의 일관성의 확보 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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