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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제국에 맞서기 : 니시다와 만해

Confronting Empires: Nishida and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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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허우성
소속 및 직함 경희대학교
발행기관 불교문화연구원
학술지 불교학보
권호사항 (61)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89-122
발행 시기 2025년
키워드 #동아시아 불교 전통   #제국의 시대   #순수경험   #자각   #마음   #평등   #자유주의   #세계주의   #무인정신   #상무정신   #일본   #미국   #제국주의적 야망   #허우성
조회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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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제국의 시대를 살아간 니시다와 만해는 불교가 전통적으로 강조해온 마음의 고양된 경험을 포착하고 이것을 자신들의 사상 전개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세계사적 흐름이 가져다 준 제국주의적인 현실이 그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니시다는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가 서양철학 전통이 과소평가해 온 마음이나 의식의 순수한 생명 사건을 선(禪)전통에서 찾아내고 이를 서양철학의 언어로 표현하면서 서양과 대결하려고 했다. 만해는 心과 진여, 불성에서 평등이라는 진리의 근거를 찾았고, 평등에서 자유주의와 세계주의를 도출하여 이것들로써 일본의 제국주의에 맞섰다. 니시다는 후기에 공개적으로 제국주의를 비판했던 적도 있다고 하지만, 동아공영권이나 “세계는 한 집”과 같은 일본 중심의 슬로건 자체가 만해와 같은 조선인에게는 불만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그리고 국체의 자기한정이 조선인이나 중국인과 같은 비일본인에게는 치명적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불교 전통 안에 있으면서 마음/의식의 능력에 대해 깊이 사고했다는 점에서는 니시다와 만해는 서로 통하지만, 제국의 중심과 식민지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상대방의 주장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만해에 따르면, 자유와 생명이라는 善을 지키기 위해서는 조선은 정치 제도에서 부패를 몰아냈어야 했고, 자유와 생명을 박탈당하기 전에 세력의 근거로서 물질문명을 충분히 수용하고 활용했어야 한다. 적어도 물질문명에 관한 한, 영국 제국과 맞서면서 영국 제국의 아래에 현대문명이 있다고 외치고, 그것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인도의 간디와는 아주 달랐다. 만해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일제에 항거하면서 불교와 상무정신을 공존시킨 덕분에, 무아, 공, 자비 등이 시사하는 바와는 달리, 불교를 무인(武人)의 불교로 만들었다. 만해와 니시다가 심(心)에 중심을 두었지만 활용방식은 달랐는데 서로 맞서야 할 제국이 달랐기 때문이다. 만해의 사후 60여 년, 이제 최소한 남한은 독립 국가로서 일제에 의해 박탈당했던 주권, 곧 내치, 외교, 경제, 국방 등의 방면에서 주권을 행사하고, 국민 개개인은 자유민주주의제도 아래에서 갖가지 권리를 향유할 정도가 되었다. 국가가 국민에게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보장해 줄 의무가 있다는 우리의 현행 헌법을 감안하면, 만해의 꿈은 이제 상당 부분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서 세계의 시간과 공간은 더욱 수축됨으로써 국제간의 상호의존도는 더 높아졌고, 그에 따라서 남한은 국제질서에 더 단단하게 편입되어서, 세계사가 우리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더 커졌다. 한국,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북한은 모두 어쩔 수 없이, 생존의 도구이자 침략의 도구인 칼과 황금에 매료당하고 있다. 이들 오국(五國)을 다루기 위해서, 우리는 장군의 경계심과 계산력이 필요하다. 그 장군은 우리를 지킬 만큼의 세력, 전략, 전술이 있어야 하고,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 만큼 자비로워야 한다. 만해가 만일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극도로 만연해 있는 물질문명과 소비주의가 무한 경쟁을 부추기고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손상하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면, 생명을 고양시켜주는 비물질적인 마음의 무한한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자기 수양을 강조하고 그의 현대문명 긍정론에 상당한 수정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내면으로 향한 자기 변화의 경험은 우리를 고양시켜서 인류사에 쉼 없이 등장하는 제국주의적 야망과 싸우게 할 수는 있다. 반드시 승리가 보장된 것은 아니지만.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