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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북한의 기업소법 제정의 의미

Why did North Korea enact the Enterprise 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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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훤일
소속 및 직함 경희대학교
발행기관 법학연구소
학술지 경희법학
권호사항 47(2)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275-300
발행 시기 2025년
키워드 #기업소   #대안의 사업체계   #사회주의 기업관리체계   #경제적 공간   #독립채산제   #박훤일
조회수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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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북한에서는 김정일 사후 4개월 만에 김정은이 핵심권력인 黨ㆍ政ㆍ軍의 최고직책에 올랐다. 김정일이 1994년의 김일성 사후 3∼4년의 유훈통치 기간을 보낸 후 1998년 국방위원장에 취임한 것에 비하면 젊은 지도자의 권력승계 작업은 초스피드라 할 수 있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권위를 활용해 일단 권력은 잡았지만, 아직은 독자적인 권위를 확보하지 못한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주민들의 지지와 존경을 이끌어낼 수 있는 ‘김정은 정책’이 서둘러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세계 여론을 무릅쓰고 강행한 장거리 로켓 발사로 인하여 가중될 국제적인 제재를 극복하고 인민들에게 약속한 물질·문화생활을 보장하고 경제개혁을 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신문이 보도한 것처럼 김정은이 자본주의적 방법론 도입을 위한 광범위한 논의를 용인하였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이 2010년 하반기 ‘강성대국’의 기치를 내걸고 전반적인 법제정비를 할 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채택한 기업소법이 김정은 체제에서 어떠한 처우를 받게 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기존 공장ㆍ기업소 관리방식에 일대 전환을 몰고 오지 않을까, 또 하나는 북한이 드디어 개방의 길로 나서게 되지 않을까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기업소란 경제단위로서의 기업, 즉 회사를 일컫는다. 과연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완결을 국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시장경제의 핵심이랄 수 있는 기업에 관한 실정법을 제정한 것인가? 주목할 것은 김일성이 1961년 말 평안남도의 대안전기공장을 둘러보고 내놓은 사회주의 헌법에도 포함된 ‘大安의 사업체계’가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가이다. 대안의 사업체계란 “공장ㆍ기업소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 밑에 모든 경영활동을 진행하며 정치사업을 앞세우고 생산자 대중을 발동하여 제기된 경제 과업을 수행하여 위가 아래를 책임적으로 도와주는 경제관리 체계”를 말한다. 북한에서는 1990년대 중반의 경제난, 2002년의 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공장ㆍ기업소 운영과 관련해 큰 변화가 일어났다. 국가재정이 바닥이 나고 에너지난이 심화되면서 기업소를 국가가 설립하고 당의 집체적 지도하에 관리일꾼을 보내 경영하던 것이 끝난 것이다. 대신 외화벌이 사업 등으로 자금여유가 생긴 기업소가 기업소를 만드는 일이 보편화되었다. 그럼에도 국유의 원칙에 따라 기업의 급수, 중요성에 상응하는 조직기관이 관리일꾼과 로력을 파견하는 것은 변함이 없으나, 그 영향력이 줄어든 것만은 사실이다. 심지어는 대남·대중 외화벌이를 통해 자금을 확보한 계층이 사적 자본을 동원해 기업소 명의를 빌어 장마당 등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2009년 말에 전격 단행된 북한의 화폐개혁은 이러한 사적 자본에 철퇴를 내리려는 의도였지만 오히려 북한의 공식경제가 붕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본다면 북한당국이 2010년에 기업소법을 제정한 의도는 화폐개혁으로 무너진 공식경제를 정비해 공장과 기업소를 바로 세우려는 의미가 크다고 해석된다. 그 결과 국가가 의당 공급해야 할 재화와 서비스를 소규모 조직 단위로 기업소가 수행하는 현상이 보편화되고 당연시되었다. 이것이 북한 정부가 현재 봉착해 있는 딜레마적 상황이다. 더욱이 북한 기업소법을 보면 사회주의헌법에 규정된 대안의 사업체계도 일부러 누락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당국의 진정한 의도라면 여기에 함축된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 기업소법에 대안의 사업체계가 포함되면 1991년 이후 김정일의 경제관리 개선에 관한 일련의 교시와 어긋난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둘째, 지배인-기사장-당 비서 간의 갈등구조가 남아 있는 한 기업소가 기업관리 개선방안을 실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보았을 수 있다. 셋째, 대안의 사업체계에 맞게 실시하도록 한 독립채산제를 기업소법에서 강조한 나머지 사회주의 기업관리 체계로 대체한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예컨대 원가, 가격, 수익성을 예시한 경제적 공간에서 ‘가격’을 ‘이윤’으로 바꿔 쓰면 적정이윤을 낼 수 있게 가격을 책정하는 독립채산제가 곧바로 시장경제체제로 나갈 수 있다. 다소 성급하기는 하지만, 앞으로는 좀 더 시장원리에 가까운 기업소의 경영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내다볼 수 있다. 경험부족의 감독이 무리한 연출을 할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드라마의 대본이나 객석의 반응이 시장경제와 대외 개방 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법률보다도 노동당의 정강이 우위에 있고, 지도자의 교시가 헌법보다도 우월하므로 법 규정 여하를 막론하고 지도자의 말씀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기업소법의 실제 적용은 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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