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기간 유럽연합은 한반도의 정치적 위기와 관련하여 중요한 행위자로 취급되지 않았고, 단지일종의 ‘답보 관계(standstill relationship)’또는 ‘조용한 외교(quiet diplomacy)’를 펼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부터 유럽연합은 북한에 인도주의 식량지원, UN에서 북한 인권 문제 거론, 북한과 공식 외교관계 수립 및 정치 대화, 6자 회담 참여 요구 등 정치적 역할을 꾸준히 하였다. 이러한 시도의 가장 큰 그림은 KEDO참여를 통해 시작되었다. 1980년대 후반 냉전이 막을내림으로써, 유럽의 외교적 관심은 공산권과의 대결외교에서 벗어나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 대한관심으로 넓힐 수가 있었고, 1993년 마스트리트 조약이 발효됨으로써 그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냉전의 종식으로 핵 관련 산업이 위축되어 기업들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시민사회는 원자력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즉, 냉전의 종식이라는 체제적 차원의 변화가 유럽의 제도, 사회, 미국-유럽 관계 등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이즈음에 발생한 한반도의 위기와 이를 타개하기 위한 KEDO 프로젝트는 유럽연합이 새로운 제도적 기반 위에서 외교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위기에 빠져있던 유럽의 핵 플랜트 산업은 경수로건설 사업에서 직접 큰 도움을 받지 못하였고, 많은 기여금에도 불구하고 향후 한반도에서 전개된 4자, 6자 회담에 초대받지 못하는 등 외교적 실패도 경험하게 되었다. 반면, 당시로는 한반도위기에서 가장 평화적인 해결책이었던 KEDO에 참여함으로써 한반도 위기를 완화시킨 공로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또한 KEDO에 참여함으로써 한반도에 깊은 관심이 있음을 주변국들에게 알렸고, 미국, 한국, 일본 등과 정치적 연대를 과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한국은 물론이고 북한도 유럽연합이 정치적으로 한반도에 등장한 것(presence)에 크게 주목하게 되었다는 점은 성공의 이유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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