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의 목적은 구소련에서 발표된 趙明熙 시의 내용이나 표현상의 특징 변화를 고찰하고 長詩 형태인 산문시 혹은 단편서사시를 창작하게 된 배경을 조명하는데 있다. 아울러 이러한 시 형식이 지닌 의의를 살피는데 있다. 조명희는 1928년에 자신의 사회주의 사상의 진원지인 구소련으로 망명을 감행하여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통하여 조선에서의 계급해방과 민족해방이라는 그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실천적 의지를 구현하였다. 첫 시 <짓밟힌 고려>(1928)는 조선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는데 초점이 있었으며, 아직 구소련의 현실을 그리고 있지는 않았다. 그의 시는 <십월의 노래>(1930)부터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미학을 띤 의도가 강조된 목적문학의 성격으로 완전히 경사되었다. 구소련에서 趙明熙는 당시 조선 문단의 상황과는 달리 敍事性을 지닌 장시 형태인 산문시 혹은 단편서사시를 유독 많이 창작하였다. 창작배경은 첫째, 기존의 짧은 短詩로는 급변하는 현실세계를 제대로 그릴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短詩 형식의 협착함을 탈피하여 현실묘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하는 방법론의 일환이었다. 둘째, 주로 長詩나 長篇敍事詩를 창작했던 마야코프스키의 영향이었다. 마야코프스키는 기존의 시 형식과 매우 다른 방식으로 시를 창작하였던 시인이었으며, 그의 시는 구소련에서 창작의 모델이었고 상당히 유행하였다. 따라서 그의 시는 구소련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상황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했던 在蘇 고려인 문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영향은 조명희의 제자 趙基天에 이어져 해방 직후 북한문단에서 최초로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창작하게 된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따라서 북한문학에서의 장편서사시 출발과 성행은 이와 같은 배경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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