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한국전쟁기 경상북도 성주지역에서 경찰이 전쟁부역자를 처벌한 사건과 1960년 4월 혁명 직후 일어난 피학살자유족회 활동을 연구하였다. 북한 인민군은 1950년 8월 3일부터 9월 24일까지 성주군을 점령하고 지배하였다. 이 기간 동안 인민군은 인민위원회 지배체제를 수립하고, 경찰과 공무원을 비롯한 우익인사들을 처형하고, 전쟁 물자 운반에 필요한 노동력을 동원하고, 식량과 의복 등의 군수물자를 징발하였다. 또한 전사자가 증가함에 따라 부족한 병력을 충원하는 의용군을 모집하였다. 이와 같은 인민군의 전쟁동원정책에 참여한 자는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해 강제된 것이든 전부 부역자로 규정되었고, 처벌대상이 되었다. 유엔군이 성주를 수복하자 경찰은 인민위원회와 치안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던 자들을 검거해 부역자로 처벌하였다. 경찰의 부역자 처벌은 두 단계로 이루어졌다. 첫 단계는 수복 직후 검거한 부역자 가운데 48명을 선별해 집단학살하였다. 이 학살은 조속히 치안을 확보하겠다는 정치적 의도에서 이루어진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적 학살로써 심각한 국가범죄였다. 둘째 단계는 경찰이 검거한 부역자를 심문해 검찰로 송치하여 재판에 회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처벌은 수복 직후부터 1951년 초반까지 계속되었다. 당시 경찰의 심문기록이 남아있는 자는 총 160명이다. 재판에 회부된 부역자 가운데 10년 이상 중형을 선고받은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는 1950년 12월 대통령 특사령에 의해 감형 또는 형 면제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1960년 4월혁명으로 이승만정권이 무너지자 수복 직후 경찰에 의해 집단 학살된 부역자의 유족들은 집단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피학살자유족회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 운동은 1961년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등장하면서 탄압을 받고 해체되었다. 한국전쟁기 부역자 처벌은 성주 사회에 심각한 분열과 내상을 남겼고, 그 치유는 현재까지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