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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한국전쟁 휴전회담시 해상분계선 협상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The Negotiation of the Military Demarcation Line for the Sea at the Armistice Talks during the Korean War and Northern Limit Line(NLL) on the Western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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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보영
소속 및 직함 이화여자대학교
발행기관 한국사학회
학술지 사학연구
권호사항 (106)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203-237
발행 시기 2025년
키워드 #휴전회담   #해상분계선   #서해북방한계선(NLL)   #서해 5도   #클라크라인   #김보영
조회수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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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의 목적은 서해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남북한의 심각한갈등과 대립의 근원을 밝히는 것이다. NLL의 적법성을 따지는 문제는 남북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남한 내에도 입장 차이가 있다. 휴전협정문에는 해상분계선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서해 5개 도서(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에 대한 별도 규정을 두었다. 즉황해도와 경기도의 경계선은 다만 서해 도서에 대한 통제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며, 서해 5개 도서는 선으로 연결될 수 없다는 규정이다. 이 제한규정은 휴전회담에서 양쪽의 의견을 절충한 결과였다. 서해상의 충돌은 해상분계선이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 서해와는 달리 동해에는 지상 군사분계선 연장선이 쌍방에 의해 묵시적으로 설정되고 지금까지 인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서해에서만 분쟁이 빈발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서해 5개 도서의 관할권 문제 때문이다. 휴전회담에서 해상분계선 개념을 먼저 제시한 것은 공산군 측이었다. 지상분계선 서쪽 끝 해역에서는 임진강 하구로부터 한강의 중심과 황해도와 경기도의 분계선을 끼고 해상까지 연장시킨 선을 해상분계선으로하며, 군사분계선 및 황해도와 경기도의 분계선 북쪽의 모든 섬에서 상대방의 무장 세력이 반드시 철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엔군 측은유엔군이 점령하고 있는 북한의 후방지역에서, 연안 부근의 특정한 도서를 확보하기 위하여 철수 원칙에 예외를 두고자 하였다. 미국은 공산군측의 제안대로 군사분계선 연장선 북쪽 섬들에서 철군하는 문제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였다. 대신에 연해도서의 관할권을, 군사분계선 연장선 북쪽이면서 전쟁 발발 이전에 통제권을 갖고 있던 지역에 귀속시킨다는 개념을 새롭게 제시했다. 이후 쟁점은 영해 문제였고, 결국 공산군 측은 도서문제를 양보하기 로 결정했다. 양측은 “쌍방이 당시 미국의 통제 하에 있던 서해 5개 섬을휴전 후에도 계속해서 통제하며, 그 외의 군사분계선 쌍방 해역의 연장선이북의 기타 모든 섬은 전부 북한에서 통제한다.”는 것에 최종 합의했다. 휴전회담의 과정을 볼 때, 양측이 지상 군사분계선을 연장한 선을 해상분계선으로 합의했다고 볼 수 있다. 서해 5개 도서는 이 해상분계선을토대로 38도선을 가상선으로 설정한 후 ‘연해도서의 정의’를 협정문에 삽입함으로써 예외적으로 처리한 것이다. 이것은 군사분계선 협상에서 쟁점이었던 ‘38도선’을 해상분계선 논쟁에 끌어들인 셈이었다. 서해 5개 도서는 38도선 이남이며, 군사분계선 연장선 이북에 위치한 섬들이다. 서해5개 도서에 대한 예외 규정이 문제의 근원이 되었다. 지상의 군사분계선설정과 같은 방식의 논란을 거친 후, 최종적인 합의는 양측 군사력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던 유엔군은 굳이 해상분계선을 설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해상분계선을 명시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공산군측의 우려를 반영하여 서해 5개 도서에 대한 별도 규정을 두었던 것이다. 따라서 휴전회담의 과정에 비추어 볼 때, 해상분계선을 명시하지 않은 점자체가 당시 군사력을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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