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말에서 18세기 전반기의 산수기행문예, 즉 農巖 金昌協(1651-1708).三淵金昌翕(1653-1722) 형제 및 그들의 門人들이 산수유람을 기록한 기행시문에서, 그리고 이들이 산수와 시문을 평가하는 글에서 ‘奇’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또한이들과 함께 어울려 유람산수를 그린 화가 鄭敾(1676-1759)의 산수화도 ‘奇’로 칭송을받곤 하였다. 중국을 보면, ‘奇’를 높은 가치로 승격시킨 문화가 明代 末期에 유례없이 나타났다. 다양한 대상물의 기이한 것들을 모은 선집들이 출간되었으며 시문의 문체, 서체, 회화,전각에 이르기까지 기이한 것을 즐기는 문화가 성행하였다. 산수의 奇景을 모아서 편찬한 서적들이 그 중에 하나였다. 명대 산수관에 개입된 奇의 가치화는 山水遊覽과 山水遊記, 그리고 山水畵 및 版畵圖에서 구현되었고, 이들은 조선으로 들어와 인기를 얻게 되었다. 18세기 전반기의 조선에서는 奇景으로 選定한 곳으로 애써 가는 산수유람이 성행하였고 그 기경된 특성을 부각하여 표현하는 기행시문이 풍성하게 제작되었다. 화가 정선은 문인들이 유람한 기경의 특성을 포착하여 그림으로 그렸다. 시문과 회화로 구현된 구체양상을 보면, 김창협의 <東遊記>에서 奇景으로 지목한곳은 거듭 시문과 그림으로 기록되는 지점이 되었듯이 시문과 회화의 관련은 밀접했다. 門巖과 門巖日出을 예로 들자면, 문암은 그 이전에 관심을 끌던 곳이 아니었으나 김창협이 ‘奇’하다고 칭송하여 묘사한 이래 18세기 전반기의 시문과 그림에서 문암을 그리게 되었다. 화가 정선은 조각처럼 서 있는 문의 형상으로 문암의 기이함을 증폭시켰다. 또 다른 예로 개성의 朴淵瀑布를 보면, 김창협이 박연폭포를 奇로 칭송하며 물줄기가길고 그 아래 시커먼 것이 있다고 하였고, 정선은 이에 입각하여 폭포수를 지나치게길게 그리고 아랫 못에 아예 시커먼 바위를 그려넣었다. 이렇게 시문과 회화로 드러난이미지는 실제의 기경보다도 더욱 기이하게 변형되었다. 18세기 전반기 조선의 산수기행예술에 드러나는 奇는 시각적으로 감흥을 일으키는기이한 이미지의 발굴과 그 이미지의 형상화로 구현되었다. 기이함의 강조로 실제모양이 변형되어도 산수의 기이한 속성이 드러난 것을 일러, 그 당시 문인들은 奇하다고혹은 逼眞하다고 칭송하였다. 여기서, 奇과 眞가 연관되는 담론의 형성은 19세기 담론과의 연관성을 열어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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