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유맹』에 등장하는 초점화자와 서술자의 관계망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특수한 상황의 소산인 재일조선인과 이들의 사회적 정체성을 소수자의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드워킨 부부에 의해 제안된 소수자의 이론틀을 활용해 재일조선인의 사회적 제 양상을 국가, 세대, 개인의 차원에서 중층적으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재일조선인의 사회적 위치는 국민국가의 틀과 특정한 시공간 안에서 다수자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대적 개념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따라서 소수자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이란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인 경계 구분에 따라 재형성되는, 다중적이고 혼종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유맹』은 1973년에 도일한 손창섭이 1976년 『한국일보』에 연재한 장편소설이다. 일본에 온 지 2년여 만에 발표된 『유맹』은 손창섭 자신을 서술자 ‘나’에 투사한 자전적 소설로, 재일조선인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응시한 의미 깊은 작품이다. 『유맹』의 서술자 뉴커머 ‘나’가 올드커머 최원복을 초점화하여 재일조선인 1세와 2세의 일상을 전달하는 가운데 소수자의 특징들이 나타났다. ‘권력의 열세’에 있는 재일조선인 대다수는 자신이 ‘차별받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자각’이 있다. 조선말로 이야기하고 마늘과 고추로 버무린 김치를 먹으며 치마저고리를 입는 까닭에 일본인과 인종적․문화적으로 ‘식별 가능성’이 있는 재일조선인들은 교육, 취업, 결혼은 물론 선거에서도 ‘차별적․경멸적 대우’를 받는 소수자였다. 일제강점기에 만주와 일본을 전전하다 분단 후 북한과 남한의 체제를 차례로 경험하고 도일한 서술자 ‘나’의 삶이란 국민국가의 틀 안의 ‘우리’에 뿌리내릴 수 없는 ‘유맹’의 삶이자 국민국가로부터 떨어져 나온 ‘난민’과 같은 인생이었다. 초점화자인 재일조선인 1세 최원복이 그렇듯 자민족, 국민 중심의 국가 틀이 바뀔 때마다 서술자 ‘나’의 정체성 또한 변화되고 굴절되면서 재형성되었다. 요컨대 『유맹』은 초점화자와 서술자의 관계망을 통해 소수자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이란 국가, 세대, 개인 간에 사회적으로 규정될 뿐 아니라 정치·문화적 맥락 속에서 변동적으로 재형성됨을 함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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