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북한과 미국이 1972년 한국의 유신체제 수립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고자 했는가에 대하여 최근 공개된 동구권 국가와 미국의 자료에 기반하여 분석해 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남한 당국은 유신선포 직전 북측과 비밀접촉을 갖고 유신을 위한 비상계엄 선포의 배경과 목적에 대해 북측에 설명하고, 유신 선포에 대한 북측의 사전 양해를 구하고자 부심했다. 즉 남한 당국은 유신 선포로 인해 북측이 대화 중단을 선언하고 나올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북한 역시 유신 선포에 대해 자신들이 비난을 가할 경우 남측이 이를 빌미로 대화를 중단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요컨대 남북이 각기 목적은 달랐지만 모두 대화가 중단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남한 당국이 유신선포에 대한 북한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북한의 양해를 구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던 것과는 달리, 미국의 양해를 구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남한 당국이 유신 선포에 즈음하여 북한과 미국에 대해 다소 대비되는 태도를 취한 이유는, 유신 선포에 대한 불만으로 북한은 대화를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던 반면, 유신 선포에 대한 미국의 불만이 미국의 대한방위공약 약화나 철회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북한과 미국은 박정희의 유신 수립 동기에 대해 비교적 정확하게 또한 거의 유사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북한은 박정희가 유신이라는 강력한 체제정비를 통해 야당의 남북대화 동참 요구와 북한의 야당 견인 시도 가능성을 차단하여 남북대화를 독점하고 북한과 대등한 대화 구도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았다. 미국 역시 유신 선포의 동기가 기본적으로 박정희가 국내적 통제를 강화하고 남북대화에서 최대한의 재량권과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라고 보았다. 이와 같이 북한과 미국은 유신체제 수립에 대해 모두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박정희 정권 고립과 남한 내 ‘혁명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대화의 통로를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유신 선포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며 침묵을 지켰다. 미국도 유신 선포에 대한 자신의 강경 대응이 초래할 한반도의 안보공백 발생에 대한 우려에서 유신 수립에 대해 침묵을 지키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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