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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중국인민지원군 철군의 원인과 중·북 관계

The Reason for Withdrawal of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 and China-North Korea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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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상준
소속 및 직함 北京大學
발행기관 국제지역연구원
학술지 아태연구
권호사항 19(2)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5-39
발행 시기 2026년
키워드 #‘8월 종파사건’   #헝가리 사태   #사회주의 진영   #중국인민지원군   #중·북 관계   #한상준
조회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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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58년 10월, 중국인민지원군은 북한에서 최종적으로 철군하였다. 기존의 학계는 중국인민지원군 철군 문제를 1950년대 중반 이후 중·북 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주목하면서 일정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는 사료의 한계로 인하여 철군이 실제로 결정됐던 정확한 시기를 밝힐 수 없었고, 철군의 원인과 배경을 중·북 관계의 측면에서만 분석했기 때문에 중국인민지원군 철군에 관한 종합적인 이해가 미흡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새로운 사료를 바탕으로 1956년 말 북한이 먼저 철군요구를 제기하여 중국이 철군을 결정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중·북 관계를 전체 사회주의 진영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검토함으로써 중국인민지원군 철군에 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혔다. 당시 북한이 중국인민지원군의 철군을 요구했던 주요 원인은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인한 중·소의 공동 내정간섭과 1956년 11월 소련군에 의한 헝가리 정권의 붕괴가 북한에 끼친 영향과 충격으로부터 기인하였다. 반면, 중국이 중국인민지원군의 철군을 결정했던 주된 까닭은 중·북 갈등이 고조되는 것을 방지하여 동북아 국제정세의 안정을 추구했기 때문이었고, 또한 북한이 사회주의 진영을 이탈하거나 중·소와 대립하여 독자노선을 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한편, 철군문제를 둘러싼 중·북의 입장은 양국 간 상호신뢰가 견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중·북은 표면적인 우호·협력 관계와는 상반되게 서로를 불신하고 의심하였으며, 철군문제에 있어 북한은 정권의 안위를 우선적으로 고려했고 중국은 국익의 관점에서 사안을 판단하였다. 따라서 중·북은 적어도 철군문제에 관하여 양국이 긴밀히 연결되어 서로의 이해를 같이하는 ‘순치상의(脣齒相依)’적 관계는 분명히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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