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은 1948년 10월 말부터 약 1년 동안 한글 전용 문제를 다룬 네 편의 글을 연이어 발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두 달여가 지난 시점이었고, 그가 시분과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조선문학가동맹은 임화, 김남천, 이원조, 이태준 등 주요 인사들의 월북으로 사실상 조직이 와해된 상황이었다. 한글 전용 문제는 이 시기 김기림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김기림은 왜 이 문제에 답을 얻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것일까? 이 논문은 한글 전용을 위한 김기림의 논리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밝히는 작업 이전에, 한글 전용 논의가 김기림에게 의미했던 바가 무엇이었고 이러한 글쓰기 행위가 놓인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이 무엇이었는지 살피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이를 집중적으로 검토해 보았다. 구체적으로는, 1945년 겨울 이후 국어심의회 참석을 둘러싼 전후 상황과 국어심의회에 관한 의문들을 제기하고, 제1회 전조선문학자대회에서 계몽운동에 관한 의견이 제시된 맥락과 이 의견서의 의미와 의의를 살핀 다음, 1948년 10월 말부터 1년여 가까이 지속된 한글 전용 논의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라는 정치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 그 속에 숨은 이면의 논리가 무엇인지 검토해 보았다. 김기림이 한글 전용 및 한글 위주 문체의 수립이라는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기초 공작이자 이를 공고하게 만들기 위한 후속 작업이 되리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김기림에게 한글 위주 문체의 수립은 학술적인 차원에서의 과제라기보다는 민주주의 국가 건설에 기여하기 위한 정치적인 차원에서의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문학가동맹에 소속되어 있었을 때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나라 만들기라는 과제가 완료가 된 이후에도 줄곧 김기림이 이 문제와 더불어 씨름했다는 사실은, 이 시기 김기림의 정치적 지향점이 특정한 이념의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광의의 민주주의,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요청되는 민주주의적 체제를 갖춘 국가였음을 알려주는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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