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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창생하는 국가, 창출하는 기예-해방후 남북의 학술분기

The Coming State' and 'The Arts of Producing' ─The division of the scholarship between 'South & North'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from the Japanese colonial 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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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장지영
소속 및 직함 성균관대학교
발행기관 상허학회
학술지 상허학보
권호사항 36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3-53
발행 시기 2026년
키워드 #학술   #조선학술원   #대학   #국대안   #건국동원   #냉전   #학술분기   #장지영
조회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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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해방이후 학술의 위상이 어떻게 변화하여 가는지와 함께 한국 지식사회가 남북으로 분화하는 계기를 탐색한다. 조선학술원과 그것의 회보인 『학술』, 그리고 국대안 파동이 이러한 관심을 규명하기 위한 대상이 된다. 본디 학술에 대한 관념이 국가와 밀착되도록 하였던 것은 식민지에서의 아카데미즘 경험이었다. 식민지 지배 속에서 제도로서 도입된 아카데미즘이 국가라는 관념과 강하게 착종되어 있었던 만큼, 학술의 위상이 결정되는 방식 역시 국가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하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었다. 조선인의 학술활동은 이전까지 주변부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지만 해방과 동시에 팽창한 탈식민적 욕망이 촉매가 되어 상상된 국가를 직접 현실화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조선학술원의 설립 취지나 실제 학술활동이 말하여주는 것은 국가의 형태를 결정하는 위치에 놓인 학술을 그들이 상정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국가가 존립하는 정당한 이유(Raison d'Etat)를 예지하며 산출해내는 기예(art, 術)로서 재규정된 이 시기의 학술은 극히 짧게 존립할 수밖에 없었다. 냉전이라는 새로운 국제적 질서 속에서 점령권력인 미군정은 학술을 자기의 수중으로 회수하여 예속시키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국대안 파동은 ‘국가를 창출하는 기예로서의 학술’과, 그것과 무관하게 ‘도래하고 있었던 국가’ 사이에서 학원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종의 쟁탈전이라 할 수 있었다. 경성제국대학이 ‘국립’종합서울대학교로 재편된 것은 남한 정부 수립에 한발 앞서 소환된 국가효과였으며, 이로써 학술의 성격은 자족적이고 탈정치적이어야만 하는 것으로 강제된다. 그것에 반대하여 ‘대학의 자유’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커져나갔지만 오히려 이는 학술의 탈정치화라는 흐름에 부합하는 것으로 오독되곤 하였다. 또한 ‘좌익’ 탄압이 강화되는 정치적 사태 속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낀 학자들 다수는 월북을 감행한다. 국대안 파동은 체제에 대한 동의와 묵종을 강제하는 학원의 또 다른 정치화를 낳았으며 그 끝은 그래서 한국 지식사회의 남/북 분기이자 지정학적 재배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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