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10월, 전위시인들은 문학가동맹 진영의 문학적 요구와 사회적 요구에 길항하는 독자적인 시의성을 확보하는 지점에서 동인시집을 상자한다. 해방기 시사의 차원에서 ‘청록파’ 계열과 ‘신시론’ 동인 사이의 독자적인 현실주의 미학을 개척한 데 시집의 의의가 있다. 전위시인 대부분은 일제 말기에 반일 투쟁에 직접 가담했고, 그 시기에 선배들로부터 시작 트레이닝을 거친다. 이들이 해방기의 진보적 리얼리즘의 장 안에서 시적인 자유를 얻은 이유는 해방기 시단의 복잡다단한 이합집산 가운데 자신들만의 미학을 선보인 데 있다. 문단의 재편 과정에서 시 세계가 상충되는 선배들의 ‘방향전환’과 뚜렷한 대조를 보인 데 있다. 이들에게 해방기의 난맥이 그 자체 미학적 스탠스가 된다. 전위시인들은 KAPF와 KAPF 이후를 위시한 전 세대가 가지는 전망과 시야를 선취하며 ‘신진’의 미적 전위를 구현하리라는 기대를 습합하는 방식을 취한다. 첫째, ‘리리시즘’과 ‘리얼리즘’을 절합하는 방식으로 이들은 익숙한 미적 전형을 창출한다. 둘째, 선배들과 사회로부터 요구받는 혁명의 ‘관념’을 시를 통해 혁명의 ‘실천’으로 끌어오는 방식으로 전위시인들은 동시대 시인들과 차별성을 얻는다. 셋째, 개별 작품에서 투쟁의 영역과 가족사나 개인의 영역이 수렴된다는 것은 문학적 관념과 실체적 행동을 접근시킬 통로를 확보하는 물음과 같다. 넷째, 전위시인들의 시 작업은 개별자와 복수, 현실과 관념의 문제로 확장되는 한국 현실주의 시문학사의 논쟁점에 유의미한 참고점이다. 1946년 ‘10월항쟁’ 이후 남한에서의 ‘좌익’ 활동은 사실상 패퇴의 길을 간다. 혁명은 끊임없이 적대관계를 재천명할 것을 요구한다. 현실에서 실제의 적을 규정하고 그 힘의 향방을 가늠하는 것이다. 이들이 1947년 이후 대부분 시적 궤도를 수정하는 이유 실제의 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국가 관념이 요구하는 절대적인 적에 몸 바쳤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전쟁 와중에 죽거나 입북한다. 이들의 시는 존재와 신념의 갈등, 내면과 외부 사이의 절대적인 모순의 문제를 해방기의 문학장 안에서 시적 주체가 전유appropriation한 결과물이다. 이들에 대한 고찰은 이후 한국 현실주의 시문학사에서 또 다른 주체가 형성되는 재전유의 과정을 추적하는 데 유의미한 참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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