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미화해는 단순히 냉전체제 속의 데탕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주의와식민지시대의 억압과 저항에 뿌리를 둔 그리고 그것의 마지막 시기에는 중국과 미국이 대결의 중심이 되었던, 냉전질서 자체의 해체를 의미했다. 다음과같은 이유에서 그렇게 볼 수 있다. 첫째, 중국의 미국 접근은 사회주의 진영의 와해, 특히 소련과 북베트남이중국의 이익에 심각한 위험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기초를 두었다. 북베트남이 미국과 협상을 추진하는 것은 문화혁명의 대의를 배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소련의 노선을 수용했다는 의미였다. 소련의 군사적 위협은 중국에게 사활적인 문제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중국으로서는 미국에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북베트남의 협상추진과 소련의 위협은 중국이 미국과화해할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해주었다. 중국은 소련을 미국보다 더 위험한 주적으로 간주하고 미국과 연합전선 형성을 정당화했다. 중국은 적어도 명분상으로는 중국이데올로기를 수정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둘째, 미국의 중국 접근은 세계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수용하고 그 위에서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의 중국 접근은 단순히 세력균형의관점에서 추진된 것도 이전 행정부의 정책변화 모색의 연장선에 있었던 것도아니었다. 닉슨은 제국주의와 민족해방운동의 대립적 질서가 끝나고 있으며 이제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는 모든 국가들이 평화의 질서를 만들어 가야한다고판단했다. 그래야 상대적으로 약화된 미국이 지속적으로 이익을 지킬 수 있을것이었다. 하지만 중국을 빼놓고 그것은 가능할 수 없었다. 그 점이 중국을 친구 혹은 동맹으로 만들어야 했던 중요한 이유였다. 그러나 중국정책 변화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고 그들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소련에대응하기 위해 중국에 접근했다는 식의 설명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중국에 접근한 주된 이유는 아니었다. 셋째, 중미화해 이후 한반도정치에는 냉전 없는 냉전이데올로기와 전통적인지정학이 작동했다. 중미화해 분위기를 반영하여 한반도정치 또한 변하는 듯했다. 그러나 남북한에는 곧 지독한 독재체제가 들어섰고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기대는 깨져버렸다. 그런데 남북한 정권이 내세운 안보위협은 사실상 존재하지않았다. 남북은 공식적으로 무력통일을 포기했으며 중국과 미국은 물론이고 어떤 나라도 무력 통일에 공감하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평화구조가 남북한 정권을 내부적으로 위협할 수 있었다. 독재체제는 그러한 위협에 대한 대응이었다. 중미화해 이후 냉전적 질서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그런데도 남북한 정권은안보위협을 내세워 적대적 공존을 유지하면서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그러한 한반도정치의 작동 메커니즘은 여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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