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구는 19세기말 전통적 유교집안에서 태어나 유교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자랐다. 그는 청년시절 정신적 방황과 윤리적 타락을 극복하고 기독교를 접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그는 기독교를 유교의 이념과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종교로 확신하고, 국권상실이란 상황 속에서 민족을 구원할 수 있는 종교로 이해하였다. 목회자로서 가난과 고난의 연속이었으나, 그 자신이 철저하게 언행일치의 윤리를 실천하였다. 한말과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해방이후 시련 속에서 ‘잃어버린 국민’을 되찾기 위해 전도인이 되었고, 평생 ‘민족’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치보다 교회를 우선시하는 보수적 신앙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1운동에 민족대표로 참여할 수 있었다. 일제말기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옥고를 치루었으며, 해방 후에는 북한에서 고난당한 이유도 이념에 앞서 민족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기독교 신앙과 민족을 별개로 보지 않았고 진정한 기독교 신앙은 민족 구원으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또 기독교 복음과 서구 문화를 구분하여, 서구 기독교 문화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비판적으로 이해하였다. 나아가 유교의 윤리적 가치를 기독교에서 실현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목회와 민족운동이란 사회적 실천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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