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현재 진행된 백석의 작품들을 전체적으로 조감하기 위하여 진행되었다. 부분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문학연구의 어리석음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1912년 7월 평북 정주에서 출생한 백석은 동시대 어느 시인과 비교할 수 없는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다. 그는 1930년 1월 19세의 나이로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등단하여 1962년 5월 나루터를 끝으로 작품 발표를 마감했다. 1959년 1월 중앙문단을 떠나 삼수군 관평리 협동조합으로 내려 간 이후 그는 인생의 후반을 30여 년이 넘도록 양치기 생활로 일생을 마무리했다. 1936년에 출간한 시집 『사슴』으로 혜성과 같이 문단에 등단한 그는 북에서도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간행하여 아동문학가로 자신의 문명을 지켰다. 그러나 북한에서 창작의 자유를 갖지 못한 채 아동문학에 전념해야 했던 그는 1958년 10월 당의 ‘붉은 편지’ 사건 이후 1959년 1월 현지에 자원 형식으로 지원하였으나 끝내 평양으로 복권되지 않았다. 천재 시인으로 평가되던 그의 인생의 후반부는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금지된 상태에서 당에 대한 충성심 부족과 ‘부르주아 잔재’로 인해 으로 비참하게 종결된 것이다. 현재 발굴된 백석의 창작시는 최근 송준의 발굴작까지 포함하면 모두 148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는 앞으로 추가적인 작품이 더 있을 여지가 많다. 백석의 산문은 소설, 수필, 평문, 정치평론, 번역 산문 등 모두 44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분단 이후 북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 번역문학의 겨우 번역시는 현대시 197편과 동화시 11편으로 모두 208편이며, 번역소설은 『고요한 돈 1』, 『고요한 돈 2』를 비롯해 4편의 장편과 단편집 1권, 중편동화집 1권 그리고 단편 2편으로 종합된다. 특히 최근 윤해연 교수의 도움을 얻어 필자가 발굴한 『고요한 돈』은 1965년 노벨상 수상작으로서 백석의 번역 부분만 모두 1,000쪽에 해당될 만큼 방대한 양으로서 백석의 번역 소설에서도 대표적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백석의 번역이 러시아어에서 직접 번역한 최초의 판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출간기록은 있었지만 그동안 발굴되지 않은 『테스』도 필자에 의해 발굴되었으며, 『노르웨이 언덕에서』 등에 대한 앞으로 발굴 작업은 백석 연구자들의 과제이다. 현재 백석 자료 발굴은 진행형이다. 그러나 현재의 발굴된 자료만 가지고도 백석 연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슴』에 국한시켜 연구하거나 분단 직전에 발표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까지의 작품을 중심으로 연구하던 시절에 비한다면 금석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국 현대시 연구에서 기초가 되는 자료 특히 백석처럼 문학사적 의미를 지닌 중요한 시인의 자료발굴은 필수적인 일이다. 현재까지의 발굴 과정을 고려해 볼 때 백석의 번역 작품들은 앞으로 추가 발굴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그 자신의 창작은 그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그동안 남과 북의 분단 등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있었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러한 장애는 온전한 백석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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