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식민지 체제 내의 조선여성이 어떻게 국제/지역 구도 속의 남한여성이 되는가. 이 글은 펄 벅(Pearl S. Buck)의 참조 및 번역을 통해서 해방기여성의 정치적 행보를 더듬고자 한다. 새로운 세계여성 모델이라는 측면에서다른 누구보다 빈번히 언급되고 있는 펄 벅이, 해방기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작 『대지(The good earth)』를 비롯한 유명한 장편소설들이 아니라, 그 이전혹은 그 이후에도 찾아볼 수 없는 낯선 단편소설들 중심으로 수용되고 있었다. 또한 동양적 세계가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약소민족을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와 관련되어 언급되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때 펄 벅은 미국 내에서는 국수주의에 대항하여 아시아의 입장과 동서화합의 주장을 대변하고 있었지만, 조선에서는 신탁통치 반대의 입장에서 남한만의 정부를 수립하자는 우익의 주장과 더불어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적대적 반공이 아니라 실질적 지원으로 세계대전을 방지하자는 펄 벅의인도주의도, 해방직후 한동안 침묵했던 우익 남한여성들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 논리가 되었다. 여기에는 물론 38선의 실정화에 따라, 북조선과 남한이구분되기 시작한 한반도의 정황이 존재한다. 이때 남한여성은 해방직후 소개되었던 소련과 중국의 이름 없는 혁명여성들이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몇몇 유명여성들, 즉 루즈벨트의 부인 엘리노어,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 등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콜론타이, 베벨, 엥겔스 등의 사회주의 여성해방이론이 아니라, UN의 성립과 활동을 배경으로 하는 아메리카 인도주의에 접근하게 된다. 이는 물론 물리적으로 미군의 지원과 미국의 영향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펄 벅은 미국에서는 좌파 공산주의 동조자의 혐의에 시달렸지만, 남한에서는 우익 남한여성의 모델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방의 열기가 지나가고 생활의 문제가 대두하자, 이들 남한여성은여성을 대상으로 계몽적인 정책들을 실현해나갔다. 그리고 아직 국가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남한에서, 그들은 당시 국제무대에서 세계여성들과 평등을 전시하며 유사 독립을 느끼게 했다. 물론 이때 UN의 영향 하에서 제기된 여성평등의 국제적 표준은 여전히 현재까지 긍정적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해방기 남한에서 펄 벅의 수용은, 해방기 사회주의 이론이 인도주의 정책으로전치되는 그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해방기 남한에서 특출한 아시아관계 여성명사로 받아들여지던 펄 벅은, 다시 대한민국(R.O.K)에서 가장 널리 읽혀지는 대표적인 서구의 여류, 즉 『대지』의 작가로 낙착될 것이었다. 이글은 기억에서 사라진 해방기 참조되고 번역되었던 펄 벅의 비판적 발언과문제적 작품을 더듬어 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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