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전의 학문은 필롤로지의 연구방법을 발달시켜 인간과 사회에 대한 풍부한 해석을 축적하여 왔다. 문헌학적 연구방법이란 문자학•음운학•훈고학 등의 소학小學과 학문계보학인 목록학目錄學을 포괄한다. 다만 근대 이전의 지식인 가운데 문헌분석의 방법을 체계화시켜 활용한 예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다산 정약용은 필롤로지의 방법론을 활용하여 인간학의 새로운 원리principle를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다산의 문헌연구 방법은 반드시 모기령 이후 청나라 고증학으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 방법은 훈고학의 발달사와 조선 경학의 전개 과정에서 배태된 것이기도 했다. 다산은『고금운회거요古今韻會擧要』와 서현본徐鉉本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직접 열람하면서 파독破讀과 통가通假의 현상에 주목했다. 특히 통가의 현상을 해성諧聲이라고 부르면서 해성의 원리에 따라 문헌의 자훈字訓을 검토했다. 그리고 『시경강의詩經講義』 및 『보유補遺』『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및『대동수경大東水經』 『경세유표經世遺表』 「장인영국도匠人營國圖」에서는 그가 말한 자학의 원리를 기초로 경전의 의미를 결정하거나 역사지리학의 관념을 수립하거나 도시계획이론을 정립했다. ㈀ 다산은 정조의 신해년 반급頒給 『시경강의』에 조대條對했던 내용을 정리하고 『시경강의보유詩經講義補遺』를 저술하면서 ‘風’ 개념을 논하고『시경』의 미자美刺 양상을 검토했다. 이 때 ‘風’을 ‘風刺’와 ‘諷諭’로 정의하여 거성去聲으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장 기본적인 원리로 사용하여 이것을 근거로 『시경』을 ‘大人’이 ‘諷人主’를 행한 간서諫書라는 독특한 결론을 도출했다. 다만 시편詩篇 해석에서는 삼가시三家詩에서 풍자시로 규정된 시에 대하여만 이 원리를 적용했다. 다산이 『시경』을 간서로 보고 국풍의 풍간의 주체를 ‘大人’으로 명백히 한 점은 사대부의 실천적 역할을 강조하는 책무의식을 잘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 다산은 『아방강역고』에서 『사기집해史記集解』 인용의 장안張晏의 설에서 말한 열수洌水를 한강漢江 습수濕水를 남한강南漢江 산수汕水를 북한강北漢江으로 비정하는 한편 춘천春川을 낙랑의 남부지부가 있었던 곳으로 간주했다. 산수의 ‘汕’이 ‘山’을 구성요소로 하고 있는 것에 착안하여 산수를 북한강으로 보고 중국문헌에 나오는 소명昭明을 소양昭陽과 같은 뜻으로 보아 그와 같이 결론지은 것이다. 또한 다산은 『대동수경 』에서 중국 바깥의 조선에서는 강의 이름에 ‘江’과 ‘河’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하여 문헌들을 조사하여 조선의 강들에 ‘水’를 붙이는 명명命名을 행하였다. 다산은 조선 반도가 고조선과 기자조선 이래로 한민족의 주 활동 무대였음을 주장하기 위해서 독특한 자학字學을 활용한 것이다. ㈂ 다산은 『경세유표 』의 「장인영국도」에서 『주례 』 「지관地官」 ‘소사도小司徒’의 육향六鄕을 국도國都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다산은 ‘鄕’을 ‘嚮’의 고자古字 ‘嚮’은 ‘向’과 동자仝字로 보아 육향을 궁성 내 거주구분의 개념으로 전용한 것이다. 다산의 도시계획이론은 「고공기」의 ‘장인영국’ 제도를 근거로 도시계획의 이상을 피력한 이론으로서 주목할 만하다. 다산은 집중시제集中市制가 변화하여 시전市廛이 확대하고 있었던 현실을 반영하여 후시後市 이외에 면조부面朝部 남문 가까운 곳에 시전을 둘 수 있다.고 고려했다. 하지만 다산의 이론은 현실의 모습을 충분히 반영하거나 현실의 제도로서 적용할 수가 없었다. 다산의 도시계획론은 무엇보다도 규모 면에서 논리적인 모순을 안고 있었다. 다산은 소학에 관한 전문 저서를 남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자학과 음운학 훈고학의 방법을 적용하여 문헌을 분석하고 ‘합리’론과 본문교합의 방식을 결합하여 텍스트의 의미를 확정했다. 그 특징을 청나라의 학술사조와 비교하여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1 다산 정약용은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를 이용하여 경학의 논의를 전개했다. 그러나 그가 사용한 심삽경주소의 판본은 완원본阮元本이 아니라 모진毛晉의 급고각본汲古閣本이었을 것이다. 다산의 경학 연찬이 완원阮元의 『십삼경주소교감기十三經注疏校勘記 』의 교감에 필적할 만한 혹은 동등한 수준의 작업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가는 되물어져야 한다2 다산은 해성諧聲의 원리를 이용해서 문헌의 자구를 분석했으나 상고음을 재구하여 문헌해석에 사용하는 방법은 구사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의 운학韻學은 운서韻書를 삼운三韻으로 구성할 것인가 사운四韻으로 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었고 상고음 체계를 연구한다든가 음운의 변화를 분석하는 학문은 발달하지 않았다. 조선에서는 오역吳棫『운보韻補 』의 협운설叶韻說이나 소장형邵長蘅 『운략韻略 』의 통운협운설通韻叶韻說을 주로 수용하였다. 다산도『논어고금주 』의 논의에서 협운설을 그대로 따르고 있고 상고음운부설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3 다산은 문헌연구에서 중국의 고전 문헌들이 최초 성립에서 완정성完整性을 지녔으리라 전제했기 때문에 문헌의 성립 층위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 그러나 문헌의 문맥적 해석에서 소학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자구문문단문헌의 조직을 파악한 점은 기존 주석구주와 신주 이하 명청의 주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 이하 명청의 주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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