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지난 해 발표한 「수복지역 양양 주민들의 한국전쟁 경험 - 어느 한약방 주인의 생애와선택」의 연속선상에 있다. 2008년과 2009년에 걸쳐 채록한 양양․속초지역 주민들의 구술 생애사를바탕으로 해방직후 38이북 주민사회를 조망하려 하였다. 구체적으로 두 여성의 생애사를 통해서 북한교육개혁의 사회적 효과에 대해 미시적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토지개혁으로 북한사회에는 적대적인 주민들이 양산되었다. 체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붉은패’와 소극적으로 비판하는 ‘흰패’이다. 이들은 서로 충돌하지는 않았지만 물과 기름처럼 대립하고 있었다. ‘흰패’들은 대부분 교육과 경제력으로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존 유지들이다. 해방이후완전히 몰락하지는 않았지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는 대단히 위축되었다. 이들 중 월남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북한에 남는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흰패들이 북한에 남았던 배경에는 교육개혁이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은 일제시기부터 자녀교육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교육개혁으로 북한에 고등학교가 설립되면서 흰패의 자녀들은 그 첫 수혜자가 되었다. 또한 해방직후 각 급 학교의 신속한 설립은 절대적인 교사 부족문제를 야기했다. 고등교육을 수학한 지식인들의 광범한 일자리가 창출되었던 것이다. 흰패들의 자녀들은 각 급 학교의 교사로 충원되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교육개혁은 토지개혁으로 발생한 흰패의 소외를 약화시키고 북한 주민사회의 균열을 봉합하는 사회통합적인 효과를 낳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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