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1940~50년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조선) 비교문학을검토하였다. 우선 8.15 민족해방 이후 민족문화 모색기에 있어 소비에트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하 소련)문학을 섭취하고자 했던 논의를 살펴보았고, ‘해외문학파’와 ‘코스모포리타니즘’을 비판함으로써 대한민국(이하한국) 문단을 비판했던 모습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당시 조선에서 소련문학이 어느 정도 번역・소개되었는지 살펴보았고, 소련문학의 번역・소개가 시 창작에 미친 영향도 살펴보았다. 한국에서 조선의 비교문학은 거의 논의된 바가 없다. 조선문학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비교문학에 관한 논의는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조선에서도 비교문학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시기가 있었다. 바로 8・15 민족해방 직후부터 1950년대까지의 시기이다. 8・15 민족해방 이후 조선문학예술계에서는 ‘민족문화론’을 제기하는 글들이 연이어 발표된다. 민족문화론의 주된 논점 가운데 하나는 소련과의국제적 친선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선문학은 그 건설단계에서부터 소련문화예술과의 교류를 강조했다. 1940~50년대 조선에서 이루어진 비교문학에 관한 논의에서 흥미로운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해외문학파’와 ‘코스모포리타니즘’에 대한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은 곧바로 당시 한국 문단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욱 주목할 만하다. 한효는 1949년에 발표한 장문의 평론 「민족문학에 대하여」를 통하여‘해외문학파’와 ‘코스모포리타니즘’을 비판하고 ‘인터나쇼날리즘’을 주장하는데, 이를 통하여 당시 조선에서는 비교문학을 ‘프로레타리아 국제주의적 관점에서 소련문학을 섭취함으로써 조선의 민족문학 건설을 뒷받침할수 있는 방법론’으로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1940~50년대 조선의 비교문학이 주로 소련문학을 대상으로 설정하고있었음을 고려할 때, 당시 조선에서 소련문학이 어느 정도 번역・소개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분단 상황에서, 그것도 조선에서 이미 비교문학에 관한 논의를 찾아보기 어려워진 실정에서 1940~1950년대 조선의소련문학 번역・소개 실정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일부 평론과 문헌을 통하여 당시 조선의 소련문학 번역・소개 상황을어느 정도는 가늠해 볼 수 있다. 1940~50년대 조선에서 비교문학에 관한 논의는 주로 이론 영역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창작 영역에서 비교문학의 양상을 검토하는 것은 상당히어려운 작업이다. 하지만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기관지 『문학예술』 1950년 2월호에 발표된 이정구의 「쏘베트 시문학과 우리 시인들」을 통하여 시창작에 나타난 비교문학의 면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미 1950년대에 단행본으로 350권 이상의 번역 작품을 내놓은 바 있을만큼, 조선 비교문학의 토양은 척박하지 않았다. 그러나 1956년 ‘8월종파사건’ 이후 ‘천리마시대’가 도래하면서 조선에서는 더 이상 비교문학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다. 이후 조선이 국제무대에서 고립되면서 조선문학 역시 비교문학을 배제하고 자체 내에서만 해명하고자 하는 배타적고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러한 조선문학의 배타적 고립은 주체문학과선군문학으로 이어지면서 외국문학과의 소통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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