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 丁若鏞(영조38, 1762-헌종2, 1836)은 두 번에 걸쳐 춘천을 여행한다. 1차 여행은 59세 때인 순조 20년(1820) 3월이고, 2차 여행은 3년 뒤인 62세 때 순조 23년(1823) 4월 15일에서 4월 25일까지이다. 1차 여행 때는 『穿牛紀行』이라는 시집을 남겼고, 2차 여행 때에는 『汕行日記』라는 여행 기록과 여행이 끝난 후 『汕水尋源記』라는 글을 남겼다. 이 중 『穿牛紀行』이라는 시집은 시로써 행로를 기록하여 7언절구 25수, 和杜詩 12수, 잡체시 10수가 실려 있다. 『汕行日記』에서는 여행 일자별로 날씨와 묵은 장소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여정별로 행적, 관찰, 감상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1차 여행 때보다는 여행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후 직접 답사하여 심증을 굳힌 기록이 『汕水尋源記』이다. 다산은 洌水란 곧 한강이고 汕水는 북한강이라는 심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2차 여행에서 직접 답사를 통하여 汕水란 산골에서 나오는 춘천의 물과 狼川[화천]의 물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본고에서는 다산의 1차 여행시집인 『穿牛紀行』을 중심으로 여행 목적 및 여정, 여정별 형상화 양상, 춘천의 역사 고증으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이제 본고에서 고찰한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일차(남일원에서 금허촌까지)에서는 출발 당일의 느낌과 산수 간에 노닐고 싶은 심정, 그리고 배에서 바라본 주변 풍광을 노래하고 있다. 제2일차(남이섬에서 마적산까지)에서는 남이섬을 지나며 南怡 장군에 대한 회고와 춘천이 가까워짐을 노래하였고, 마적산에서 묵으며 경전을 늘 가까이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제3일차(기락각에서 청평사까지)에서는 기락각을 통하여 청평사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묵으며, 李資玄을 회고하며 그의 고고한 인품을 드러내고 있다. 제4일차(우수주)에서는 지인이던 李檗의 종형제 李楘을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고 헤어짐을 아쉬워하였으며, 다산이 벼슬할 때 만났던 사람의 아들 윤종원을 만나 학문의 이치를 연구하기를 당부하며 떠났다. 아울러 춘천 맥국설이 잘못되었음을 고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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