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사는 시민들의 할 말을 뺏으려는 공권력의 줄기찬 노력으로 점철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승만 독재와 한국 전쟁, 뒤이은 군부 독재의 저 기나긴 세월 동안 사회적 금제들이 우리의 삶 곳곳에서 치밀하게 작동하면서 우리는 안팎의 검열에 시달려야 했다. 제 할 말을 다 못하는 이러한 시대 상황을 두고 ‘사회적 실어증’이라 명명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박남수와 같은 월남 시인들에게는 이러한 억압에 더해 ‘월남’이라는 조건이 부과하는 짐이 하나 더 얹혀졌다. 시인의 말문을 막는 이 이중의 무게를 뚫고 ‘남한 땅에서의 우리 삶이 얼마나 아름답지 않은지’를 노래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터이다. 그 점에서 그가 만든 ‘새’의 이미지란 결국 우리 삶의 고통스러움을 우회적으로 말하기 위한 그만의 상징 장치였던 셈이다. 따라서 이제는 시인 박남수를 이미지스트나 모더니스트의 후예쯤으로 기억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러한 평가에 걸맞은 부분은 그의 제 2기 시집 『신의 쓰레기』 소재 시편들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시인 박남수 자신에게 있어 그 ‘사상’의 핵심은 분단의 아물지 않는 상처를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때로 시원(始原)이라는 이름으로 그려보았던, 어머니와 할머니가 있는 고향에서의 삶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시인으로서 필생의 과업이었던 것이다.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그의 시적 방법은, 자신의 마음 속에 넘쳐흐르는 그리움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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