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김사량은 북한 체제의 중심부에서 활동했다. 김사량은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등 각종 문학 조직의 주요 직책을 맡아 일하며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지만 연안파 항일 투쟁을 다룬 「호접」의 작품집 누락과 세 번에 걸친 『노마만리』의 개작, 시집 『응향』 검열 사건 등을 거치며 1947년부터 약 2년 간 창작 활동을 중단하기 이른다. 작가의식을 갖고 발표한 「마식령」․「칠현금」 등의 완성도 높은 작품들도 북한 문단의 지도 방향과 맞지 않아 자주 비판의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사회의 다양한 하위주체들을 현실적으로 그리는 김사량의 작가의식과 이념적․전형적 인물과 사건만을 창작의 대상으로 허용하는 북한 문단은 근본적으로 부합할 수 없었다. 김사량의 사망 후 북한 문단은 1980년대 복권까지 종군기를 제외한 모든 작품을 문학사에서 삭제함으로써, 그와 북한 문단의 불일치를 간접적으로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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