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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초기 북한 고고학의 신석기·청동기시대 구분 - 일제강점기 고고학의 극복과 문화전파론 -

Establishing Neolithic and Bronze Age in the Incipient Phase of North Korean Archaeology

상세내역
저자 이기성
소속 및 직함 한신대학교
발행기관 호서고고학회
학술지 호서고고학
권호사항 (25)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4-29
발행 시기 2026년
키워드 #북한고고학   #문화전파론   #도유호   #한흥수   #일제강점기 고고학   #이기성
조회수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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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도유호로 대표되는 초기 북한고고학의 가장 큰 목적은 일제강점기 고고학의 극복이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식민사관으로 이어졌던 청동기시대의 부재, 금석병용기 등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것이 초기 북한 선사고고학의 주된 목표였다. 초기 북한의 고고학계를 주도한 이는 1930년대부터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역사적 인식을 바탕으로 사학계에서 활동하였던 한흥수와 도유호였다. 이후 북한에서 한흥수와의논쟁을 거쳐 초기 북한 선사고고학을 주도하게 되는 도유호는 문화전파론에 입각한 고고학자였으며, 그에게 있어 역사 발전이라는 것은 단일한 기원을 가지고 있는 문화 요소들이 각 지역으로 전파, 확산되어 가며 각각의 문화 요소들이 분화, 융합되며 그 지역의 새로운문화적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개했던 조선지역에 내재적인 발전은 없었다는 인종주의적 문화우열론적 전제에서 시작한 일제강점기의 일본인 연구자와 문화는 외부에서 전파되어 온 요소로 성립 발전한다는 문화변동에 기반한 전파론적 전제의 초기 북한 고고학은 그 전제 자체는 달랐지만 결과적인 해석은 동일할 수 밖에 없었다. 즉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문화, 청동기시대의 거석문화 등 조선의 선사시대 문화의 기원을 모두 북방지역 등의 외부에서 찾고 있으며, 이는 여러 측면에서 일제강점기 일본인 연구자들의 선사시대에 대한 해석과 유사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고고학적 연구성과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엄격한 유물사관 대신 문화전파론에 입각한 도유호와 초기 북한고고학의 신석기ㆍ청동기시대의 구분, 금석병용기의 부정은 과학적이고 정확한 층위적 발굴을 통한 문화 양상의 파악으로 가능했었던, 자연스런 학문발전의 과정에서 얻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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