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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해방 후 북한 중앙정권기관의 형성과 변화(1945~1948년)

The Formation and Transfomation of North Korean Power Organs after Liberation of Korea, 1945-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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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광서
소속 및 직함 조선대학교
발행기관 평화와 민주주의연구소
학술지 평화연구
권호사항 19(2)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333-366
발행 시기 2026년
키워드 #정권 기관   #소련군   #행정10국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북조선인민위원회   #북한 초대 내각   #기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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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해방 후 한반도 정세와 세력관계의 변화 속에서 북한 중앙정권기관의설립 과정을 살펴보고, 인적 구성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공산측은 1945년 10월 북조선 5도인민위원회 연합회의를 거쳐 임시인위 수립을 시도하였으나 민족주의 지도자 조만식의 위원장 수락 거부로 인해 행정10국이 탄생되었다. 북한 최초의 중앙행정기관인 행정10국은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비슷한 비율로 분포함으로써 민・공 연립기관의 성격을 띠었다. 행정10국 국장단은 우파적성향의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과반수를 차지하였고, 심지어는 친일 혐의를 지닌 인물들도 포함되었다. 모스크바 결정에 따른 좌우대립과 조만식 그룹의 퇴장 후 북한 정국은 공산당에 의해 주도권이 확립되었다. 북한 최초의 중앙권력기구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이하 임시인위)의 구성은 통일전선에 따라 비공산계의 비율이 절반 가까이 유지된 채 정치적 안배와 전문성을 반영하였다. 특히 국장단은 행정10국을 그대로 계승하였다.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미・소와 좌・우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공산측은 권력의 좌경화에 치중하였다. 1947년 2월 임시인위에서 개편된 북조선인민위원회(이하 북인위)는 전문성을 갖춘 인사들을 임명하였지만 대다수가 북로당 소속으로 충원됨으로써 북인위는 사실상 북로당에 의해 독점되었다. 북한 정부 수립은 다른 차원의 세력 분할을 고려해야 했다. ‘통일정부’를 내세운 상황에서 남로당을 위시한 남측 제세력과의 권력 균점을 피할 수는 없었다. 북한 정부는 남북로동당의 주도하에 ‘통일전선’ 정부 형태로 등장하였으나 모든 정부 성원들의 정치적 성향은 공산측의 요구를 충족시킨 것은 아니었다. 주지하다시피, 소련지도부는 북한 정권기관 형성 과정에 긴밀하게 개입하였다. 다만 개입의 정도는 단계별로 성격을 달리하였다. 행정10국은 소련군 지도부가 직접 조직한 것과 다름없었으나, 임시인위부터는 현지 공산주의자들의 역할이 확대되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