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아, 조선�(1952)을 비롯하여 ‘해방’ 이후 조선 및 재일조선인에 관해 쓰인 장혁주의 몇몇 일본어 텍스트를 냉전 아시아라는 확장된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이제까지 ‘해방’ 이후 장혁주의 일본어 창작이나 일본귀화의 문제는 ‘조선/한국적의 포기와 ‘일본’ 적의 획득이라는 내셔널한이항 대립 속에서 조명되어왔다. 그러나 구 식민지들인들의 전후 처리 문제가 놓여 있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점령당국이라는 제3항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점령기 일본의통치 권력은 실제로 연합국 최고 사령관과 일본 정부의 파워엘리트들이결합함으로써 미일합작구조를 이루었고, 이 복수의 권력은 서로 책임을전가하는 구조적 모호성을 태생적으로 수반했기 때문이었다. 일본 측에서 보자면, 전후 최대 규모의 ‘소수민족’이 된 재일조선인 사회는 당시 상징천황제를 중심으로 재편 중인 일본 국민의 경계 바깥으로 설정된 집단이었다. 한편, 점령당국 측에서 보자면 재일조선인 사회는 레드퍼지(red purge)와 안정적인 반공 무드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엄격히 통제되어야할 집단이기도 했다. 미일의 이해관계가 만나 성립된 대 마이너리티 정책의 목표는 과거 제국의 혼종적인 인적 구성이 남긴 흔적들을 지우고 천황휘하의 동질적인(homogeneous) 단일 민족 신화를 재편하는 것이었다. 이시기 장혁주의 재일조선인 관련 텍스트들은 점령당국을 내포 독자로 설정하면서 재일조선인 사회 일반과 스스로를 분리시키는 전략을 취하고있었다. 물론 이로써 장혁주와 재일조선인 사회와의 불화와 갈등의 골은걷잡을 수 없이 깊어 갔지만, 적어도 그는 우경화하는 점령당국에 대해 재일조선인 일반과 구별되는 자신의 발화 위치의 안정성(security)과 신용을확보할 수는 있었다.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혹독한 평가와는 달리 그는�아, 조선�을 통해 한국전쟁 중인 한반도의 조선인들을 향해 깊은 연민을보낸다. 이 확연한 온도 차이는 대타자인 점령 당국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공간 전이가 일어났기 때문이기도 했고, 보다 더 실제적으로는1952년까지 국외 이동시에는 보장되었던 일본 국적으로 입국할 수 있던덕분이기도 했다. 결국 당시의 남북한 국민국가 체제 경쟁에 대한 의미있는 성찰과 비판조차도 ‘국민’의 신분을 획득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했던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일본 국민의 신분으로 적정 거리를 두고 취재한 한국전쟁은 많은 조선인들이 난민으로 전락하는 비참한 현장이었다. 이 난민화하고 있는 조선인들의 현실을 수용소와 고아의 메타포를 통해 형상화한 것이 바로 그의 장편 �아, 조선�(1952)이었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 성일은 끊임없이 남이냐 북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놓이지만, 난민/국민의 경계에서 자연인 장혁주가 결국 선택한 것은 샌프란시스코 발화 조약 이후 귀화 이외의 에스닉 정치를 인정하지 않은 일본으로의 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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