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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16~17세기 여진의 성장과 요동 변경지대 성격 연구 - 변경지대의 변화를 통해 본 만리장성 동단기점설 비판 -

The Growth of Jurchens and the Character of the Liaodong Border Area : A Criticism on the Eastern Point of the Great Wall through the Change of Border Ar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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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남의현
소속 및 직함 강원대학교
발행기관 동북아역사재단
학술지 동북아역사논총
권호사항 (34)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295-330
발행 시기 2026년
키워드 #요동   #요동변장   #요동도사   #호산산성   #동단기점   #여진   #압록강   #위소   #남의현
조회수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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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16~17세기 여진사회의 역동적인 변화과정을 통해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이 압록강이라는 중국의 주장을 비판해 보고자 한 논문이다. 16세기의 동아시아 국제관계는 매우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일본은 임진왜란을 통해 동아시아를 제패하려고 하였으며, 명나라는 여전히 동아시아의 강국임을 자부하며 몽골과 여진을 경계하면서 조선과 밀접한 관계를 강화시켜 나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16세기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일본 이외에 여진지역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여진족이 부족을 점차 통합해 나가며 명의 遼東邊墻을 위협하면서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었다. 이러한 16세기 여진의 성장은 여진사의 복원을 뛰어넘어 16~17세기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현재 중국은 만리장성 동단기점을 압록강이라고 주장하고 명대 만주 지역에 산재하던 대부분의 여진족이 명의 기미위소로 살아갔다고 주장한다. 이는 곧 여진지역이 명의 강역이었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16세기 여진사회의 역동적인 성장 모습과 이들에 대한 명나라 변경정책의 실상을 살펴본 결과 명나라는 수세적 변경정책을 취하였으며 압록강 변에 만리장성과 같은 연결된 벽돌성을 축조한 적이 없었다. 장성의 기본 개념은 ‘일선으로 연결된 성벽’을 의미한다. 중국은 명대 요동을 방어하기위해 설치한 요동변장을 확대해석하여 만리장성으로 주장하며, 그 마지막 지점인 호산산성에 산해관과 같은 벽돌장성을 산등성이를 따라 일선으로 축조하였고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결과 동단기점으로 알려진 호산산성은 명대 강연대보가 있던 자리였으며 이것은 명나라가 여진방어를 위해 압록강 유역의 고구려 성을 활용한 고립된 석성이자 여진을 방어하기 위한 전초기지에 불과함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전초기지를 중국이 만리장성으로 둔갑시킨 결과가 현재의 호산산성이며 이를 통해 전체적으로 명대 요동지배가 매우 견고하고 명의 강역이 매우 넓었다는 이론적 틀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90년대 이후 중국이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을 압록강유역으로 확장시킨 배경에는 '강역의 확장'이라는 단순한 관점을 넘어 근세 만주 역사에 대한 선점, 변경의 안정 , 북한에 대한 대응, 경제 개발 등과 같이 현실과 미래에 닥칠 다양한 문제를 복합적으로 풀어나가고자 하는 현실적 목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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