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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고려·거란 ‘30년 전쟁’과 동아시아 국제질서

The Thirty Year War between Goryeo and the Khitans and the International Order in 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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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육정임
소속 및 직함 고려대학교
발행기관 동북아역사재단
학술지 동북아역사논총
권호사항 (34)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1-52
발행 시기 2026년
키워드 #고려․거란 30년 전쟁   #동아시아 국제관계   #고려의 대외관계   #거란의 대외관계   #육정임
조회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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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고려․거란의 30년 전쟁은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역학 상 무게 중심이 중국에서 거란으로 옮겨가는 과정의 결정적인 단계였다. 30년 전쟁 과정에서 나타난 고려․거란 관계의 추이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동을 그대로 반영했다. 본 논문은 30년 전쟁의 배경과 과정, 그리고 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고찰한다. 고려․거란의 전쟁은 1차~3차 전쟁으로 분류하는 것이 학계에서 통용되는 관행이지만 연구자들마다 그 구획하는 시점이 다르고 역사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데다, 단순히 순차적인 명칭은 연표적 구분일 뿐 전쟁의 역사적 흐름을 반영하지도 못한다. 고려와 거란이 관계한 200여년의 기간 중 특정한 시기, 즉 993년부터 1022년까지 30년의 기간에 집중되었던 양국의 전쟁을 분절이 아니라 전 과정을 연속된 국면으로 보아 ‘30년 전쟁’이라 칭하고, 그 안에서의 구분은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관점에서 ‘전연지맹' 체결을 기준으로 양분할 수 있겠다. 980년을 전후하여 동아시아 국제사회는 급변하게 된다. 송 태종이 북한 정벌에 성공해 중국을 통일하고 송과 거란이 직접적으로 충돌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으며 거란은 요동의 여진 토벌에 나서면서 동방경략을 시작했다. 격동하는 국제정세에의 대응은 거란과 고려 모두에게 과제였다. 거란은 군사력 증진과 전쟁을 통해 역량을 확대하는 정책으로 나가며 요동 방면의 정복을 서둘렀다. 한편 고려는 보수적인 친중국 외교를 지키며 전통의 조공관계를 더욱 강화했다. 거란은 986년 송태종의 북벌을 성공리에 막아낸 뒤 고려로 공격 방향을 바꾸어 993년 고려를 침공해 송과 고려, 송과 여진의 관계를 끊고자 했다. 고려는 거란에게 칭신납공할 것을 조건으로 강화를 맺는 대신 강동 6주의 영유권을 인정받았다. 거란이 고려의 조빙약속을 받는 선에서 물러난 이유는 송 쪽으로 전선을 돌려야 했고 고려의 저항력도 가벼이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고려의 강동 6주 개척으로 여진 세력을 압록강 유역에서 몰아낸 것은 거란으로서도 전혀 손해날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양측은 서둘러 강화를 체결할 수 있었다. 고려로서도 국제사회의 중심으로 주변국들 관계를 조정하는 맹주 역할을 송에게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994년의 강화는 양쪽 모두에게 미봉책이었다. 고려는 태조 이래 금수지국이라며 소원했고 문화적으로도 이질적으로 느끼는 거란에게 臣服하는 것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형식적인 조공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기회를 보아 宋과 전통적인 사대조공관계를 회복하려고 애썼다. 거란은 송을 이기고 전연지맹을 체결하여 실질상 동아시아의 중심국이 되자 고려에 대한 압박을 재개했다. 1010년 고려에서 벌어진 목종 시해사건의 問罪를 구실로 시작했지만 사실상 고려를 완전히 종속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거란의 당초 예상과 달리 고려를 무력으로 제압하는 일은 훨씬 오래 걸렸다. 1019년 초까지 거란은 주요 전쟁만도 5차례 치루며 대대적인 공격을 단행했지만, 고려의 거센 반격으로 결국 전쟁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30년 전쟁은 양국의 충돌하는 외교 정책이 힘의 대결을 통해 조율되어 가는 긴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거란은 고려에 대해 완전한 종속이 아니라, 명분상의 상하질서인 조공관계로써 고려에게 상국이라는 지위를 인정받고 국제 사회의 중심임을 의례화하는 데서 만족해야 했다. 고려는 거란의 침략을 막아내는 저력을 보여 비교적 유리한 위치에서 거란 및 다른 국가들을 대하게 되었다. 거란과 조공책봉관계를 맺고 거란의 연호를 사용하지만 고려는 외교상 운신의 자유가 있었다. 송과의 관계도 계속 이어졌고, 여진과도 교빙관계를 이어갔다. 그래도 동아시아를 규율하던 조공질서의 중심이 북방민족 거란에게로 이동하였음을 인정하고 거란에 사대함으로써 국제 사회의 세력균형과 안정을 도모했다. 거란과 고려의 전후 새로운 관계가 바로 10세기 이후 나타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새로운 구조의 단면이었다. 단일한 중심세력 아래에 일원적인 상하관계는 성립되기 어려웠고 또 명목적인 세력 중심이 있다 해도 그것은 중국의 왕조가 아니라 북방의 정복왕조였다. 맹약 관계에 있던 거란과 송은 물론이고 명목적인 조공책봉관계에 있던 거란과 고려, 고려와 여진, 송과 서하 등, 대개가 비교적 평등한 위치에서 복잡하지만 자유로운 외교노선을 선택했던 주체들이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