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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러시아 · 우즈베키스탄 · 북한, 그리고 다시 우즈베키스탄 ― 페르가나 고려인 김 레오니드의 살아온 이야기 ―

Russia ․ Uzbekistan ․ N.Korea and Uzbekistan Again: A Life Story of Fergana Koryeoin Kim Leon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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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영상
소속 및 직함 한국외국어대학교
발행기관 역사문화연구소
학술지 역사문화연구
권호사항 (35)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525-554
발행 시기 2026년
키워드 #페르가나 고려인 김 레오니드   #고려인문화센터   #장수노인단   #단오축제   #임영상
조회수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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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36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출생한 김 레오니드는 그 다음 해 부친을 잃고 모친과 10세 위인 작은누나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로 강제이주 당했다. 당시 북한에는 그의 형과 큰누나가 조부모와 살고 있었다. 1957년 김 레오니드는 30년 전에 생이별한 큰아들을 만나려는 모친과 함께 북한으로 들어갔다. 형이 살고 있는 북한 김책시에서 그는 고등학교에 편입하여 김책시 고등학교 축구대표선수로 도경기에 참여했으며, 이 때 같은 상황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북한으로 들어와 탁수선수로 도경기에 출전한 박 다리야를 만났다. 김일성대학 러시아어과를 졸업한 김 레오니드는 농업위원회(『과학통보』)에서 소련에서 간행하는 농업 관련 잡지의 기사를 번역, 편집하는 일을 하던 중, 1968년 소련영사의 도움을 받아 모친(2년전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간)을 만난다는 구실로 극적으로 북한을 탈출, 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한 살짜리 아들은 다음에 초청하기로 하고 세 살짜리 딸만 데리고 나온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온 김 레오니드는 한글신문 『레닌기치』에서 일하면서 아내와 아들을 거듭 초청했으나 북한 당국의 방해로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1971년부터 『레닌기치』의 페르가나 주재기자로 활동하는 가운데, 1975년 김 레오니드는 똑같은 처지로 아들만 데리고 북한을 탈출한 박 다리야와 만나 결혼했다. 피차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대신하여 ‘다시 만든 가족’이 된 것이다. 그들 부부 사이에 아들이 태어남으로 이들 가족은 각기 두 식구에서 다섯 식구로 되었다. 1977년 『레닌기치』를 사직하고 지역신문 『페르간스카야 프라브다』의 사진기자로 일하다가 소련의 해체이후 신문사가 어려워져 1992년 사직했다. 그 후 김 레오니드는 우즈베키스탄 최초로 성립한 페르가나 주 고려인문화센터의 부회장으로 일했다. 고려인문화센터에서 그는 한글교육을, 그의 부인 박 다리야는 한국의 전통춤과 노래를 가르쳤으며, 한국어에 능통한 그들 부부는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우즈대우자동차의 통역으로 일했다. 김 레오니드는 2000년부터, 1997년에 성립한 페르가나 고려인 장수노인단의 회장으로 고려인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200명에 달하는 장수노인단의 회원들은 매주 금요일 친교모임을 가지면서 어려운 노인들을 섬기고 있으며, 페르가나 고려인사회의 전통명절(음력설, 단오, 추석 등) 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들 행사 가운데 초여름 명절인 단오행사는 ‘한국의 날’이라고 할 정도로 한류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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