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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신남철과 ‘대학’ 제도의 안과 밖 ― 식민지 ‘학지(學知)’의 연속과 비연속 ―

Nam-cheol Shin and the Inside and Outside of ‘Collegiate’ System - Based on continuity and discontinuity of ‘learning for knowledge (學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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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종현
소속 및 직함 동국대학교
발행기관 동악어문학회
학술지 동악어문학
권호사항 (54)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381-430
발행 시기 2026년
키워드 #신남철   #경성제국대학   #국립서울대학교   #김일성종합대학교   #중앙 아카데미   #조선학/동양학   #마르크시즘   #조선학술원   #국립서울대학교설립안   #연속과 비연속.   #정종현
조회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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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 제3회 졸업생 신남철은 근대 한국의 ‘지식제도’의 전개를 개인 차원에서 보여주는 하나의 기호이다. 그는 경성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이후 동(同) 대학의 조수, 동아일보 기자 등을 거치면서 식민지 조선의 학술과 저널리즘에서 활동하다가 해방 직후에는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 ‘국립서울대안’에 반대하여 월북,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의 이력은 <식민지-해방기-분단기>를 횡단하는 한국 지식제도의 연속/비연속의 축도이다. 신남철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는 핵심적인 키워드는 경성제국대학이라는 제도와 마르크스주의로 표상되는 서구철학이다. 경성제국대학 출신 조선인 엘리트들은 학술어로서의 일본어에 의해 주변화된 ‘조선어’ 학술을 통해서 지식의 독립을 추구하고, 동시에 ‘제국대학’이라는 제국의 아카데미즘의 제도를 근거로 조선인의 민간 학술과 자신들을 구별하는 이율배반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신남철이 편집에 관여했던 경성제국대학 출신들의 학술 동인지 『新興』은 그러한 정체성이 반영된 사례이다. 경성제국대학 출신들과 일본 및 구미에서 유학한 철학 엘리트들의 모임인 ‘철학연구회’(1932) 동인으로 참여하고, 백남운 주도의 ‘중앙 아카데미’ 수립에 동참한 신남철의 행보는 대학 제도 안으로 진입이 허용되지 않았던 식민지인이 대학의 밖에서 구성하고자 했던 식민지적 아카데미즘의 한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1934년을 전후하여 등장한 ‘조선학 운동’에 대응하여 신남철이 주장한 ‘과학적 조선연구’는 경성제국대학과 마르크시즘에 근간한 신남철의 정체성과 상응하고 있다. 신남철이 주장한 ‘과학적 조선연구’의 방법과 내용에는 조선어 학술을 통해 조선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는 ‘지식’의 독립, 아카데미즘에 근거한 과학성, 마르크스주의가 종합되어 있다. 해방은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신남철의 정체성을 더욱 구체화한 계기였다. 해방 이후 신남철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며 대학 내부에서 ‘국립서울대안’ 반대 투쟁을 수행하였다. ‘국립서울대안’이 포고된 이후 신남철은 이 설립안의 비현실성, 강압적 추진, 교수회 및 학생의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는 비민주성 등을 이유로 ‘국대안’을 반대하면서 교육 부문을 탈식민적 민족교육으로 재구성할 것을 주장한다. ‘국대안’ 반대 운동과 더불어 식민지 시기 중앙 아카데미 구상을 계승한 ‘조선학술원’ 설립운동을 주도하지만 건국을 둘러싼 제정파의 갈등과 분열에 의해 무산되면서 월북하게 된다. 월북 이후 신남철은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며 북한 아카데미즘의 중추로 활동하였지만, 현재 저술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1950년대에 남긴 신남철의 글을 통해서 미국 헤게모니하에 재편되고 있는 남한의 사상계와 대중문화 등을 ‘미제국주의’에 의한 말초적 문화의 확산으로 비판하는 사회주의자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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